‘조지다’. 사전적으로 꼼꼼히 단속한다거나 망친다는 의미의 속된 말이다. 언론계에서는 출입처나 어떤 대상을 세게 비판한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2000년 5월 22일자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조질 때는 ‘악’ 소리도 못하게 조져라’, ‘아무리 빨아도 한번 조지느니만 못하다’는 원칙 내지 통념들이 기자들 사이에 있다고 한다. 솔직히 취재원 입장에서는 경악할 이야기다. 기자들이 그야말로 ‘조질’ 때 많이 쓰곤 하는 연속보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찬찬히 살펴보기로 한다.
Q: 기자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비판기사를 지속적으로 작성하는 때가 있다. 정당한 비판기사라면 몇 건의 기사건 감수함이 마땅하겠지만, 유사언론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하거나 선을 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와 같은 반복적 비판기사 혹은 연속적 부정보도가 취재윤리 위반은 아닌지, 법적인 문제점은 전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A. 동일한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비판기사를 흔히 ‘연속보도’ 혹은 ‘연속기획’이라고 명명한다. 이 외에도 ‘시리즈 기사’, ‘기획시리즈’, ‘집중취재’, ‘기획연재’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고, ‘단독 심층 연속보도’라는 다소 장황한 명칭이 붙기도 한다.
연속보도가 최근에 갑자기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광고주협회보 KAA저널> 2019년 7·8월호를 보면, 당시에도 이미 기업 활동을 폄하하는 연속보도 문제가 심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한 제약회사에 관해 특정 신문에서 약 두 달에 걸쳐 6건의 부정적 기사를 연거푸 냈다. 해당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들러리’, ‘먹튀’, ‘눈멀어 역사왜곡까지’ 같은 통상의 기사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을 제법 센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것만 봐도 불순한 의도나 동기가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기업·기관 입장에서야 부정적 연속보도는 다 부담일 것이다. 그렇다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모든 연속보도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안이 복잡하거나 심층적으로 깊게 파고들 필요, 집중적인 추적의 필요가 있다면 얼마든지 연속보도할 수 있다. 연속보도 가운데 일부가 문제일 뿐이며 그것에 관해서만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면 연속보도가 유사언론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무엇으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보다 간명한 판별을 위해 우선, ‘매체의 동일성’과 ‘의도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토대로 유형별 분류를 시도해보았다. ‘매체의 동일성’은 연속보도를 한 매체가 하나의 동일 매체인지, 아니면 상이한 매체들인지를 의미하고, ‘의도성’이란 연속보도가 기획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다.
A형 연속보도는 하나의 매체에서 의도적인 연속보도를 내는 경우로서 가장 보편적인 연속보도 유형이다. A형 연속보도는 그 자체만으로는 유사언론행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보도와 유사언론행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아래에서 상술하는 별도의 기준에 비추어 판별하는 수밖에 없다.
B형 연속보도는 동일한 대상에 대해 여러 매체들이 돌아가면서 비판기사를 쓰는 것이다. B형 연속보도라고 하면 당장 몇몇 매체들이 작당을 하고 시쳇말로 조지는 기사를 쓰기로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기획 시리즈 가자. 내가 먼저, 너희가 차례로 조져. 광고 나올 때까지”(2024. 7. 17일자 반론보도닷컴 만평)와 같은 식이다. 다만, B형 연속보도라고 전부 유사언론행위는 아니다. 사안이 너무 커서 소규모 매체 혼자서 커버하기 버겁다면, 얼마든지 다른 언론사들과 협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공익적 연속보도의 사례는 많다. 그러니 B형이라 해서 무조건 유사언론행위라고 판단하지는 말자.
C형 연속보도는 서로 다른 매체들이 우연의 일치로 동일한 사안을 다루는 경우다.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매체들이 동일한 사안을 뉴스가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의 공익성이 확실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연속보도, 보다 구체적으로는 A형과 B형 연속보도의 정상성 판별에 참고할 만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광고나 협찬 요구와 같은 추가적인 사정이 있다면 유사언론행위에 가깝다. 보도 전이든, 후든 요구 시점은 중요하지 않다. 요구했는데 안 받아들여서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겠고, 일단 보도부터 하고 삭제를 조건으로 광고나 협찬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사에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나 공격적인 표현들이 사용되었다면 역시 유사언론행위에 가깝다. ‘들러리’, ‘먹튀’, ‘꼬리 자르기’, ‘무늬만 ○○’, ‘손 안 대고 코 풀기’, ‘돈주머니만 불린 것’ 등이 그 예다.
셋째, 기사 내용이 허위면 유사언론행위에 가깝다. 아무리 열심히 취재해도 사람인 이상 오보를 낼 수 있다. 문제는 애당초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경우다. 나아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례, 주제와 무관한 사례를 무리하게 끼워 맞췄을 수 있다. 이런 사정들 모두 유사언론행위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다.
넷째, 맥락 없는 비판이라면 유사언론행위에 가까울 수 있다. ‘여기서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사들이 있다. 이유나 맥락이 보이지 않고 찾을 수 없는데도 연속보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정상적인 기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