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흔히 PPL(Product PLacement)이라고 언급되는 간접 광고 또는 제품 배치 광고는 광고주가 인기 콘텐츠를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이며, 동시에 제작사의 중요한 재원이다. 미국의PQ Media에 따르면2023년 전세계PPL 시장의 규모는 전년 대비 약 12.3% 성장한 약 296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며,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이후 4년간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22년의 14.3%에 비하면 다소 성장세가 둔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전체PPL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의 방송 업계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작가 조합과 배우 조합 등이 파업을 강행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글로벌 PPL 시장의 성장은 더욱 기세를 더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성장의 주요 모멘텀 중 하나는 최근 모든 기술적 화제의 중심에 위치한 인공지능이다. 특히 전반적인 디지털 광고 업계에 비해 다소 발전 속도가 더디게 나타났던 가상 간접광고(Virtual Product Placement)의 영역 활성화에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방송업계 파업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위협이라는 점이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은 방송업계와 광고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VPP가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
간접광고는 이미 국내외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광고 방식이다. 특히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 편성표에 의지하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능동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앞뒤로 붙는 광고 인벤토리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콘텐츠 내에서 광고를 제시하는 간접 광고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그 기원을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며, 198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E.T.>는 여전히 가장 성공적인 간접 광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영국의 스파이 캐릭터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 시리즈’는 그 뛰어난 작품성과는 별개로 수많은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광고 콘텐츠로서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적인 간접광고는 모두 촬영 단계에서 광고의 배치 여부나 형태 등이 결정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콘텐츠 기획 또는 촬영 단계에서의 사전 협의를 통해 어떠한 제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미리 확정해야 했고, 이미 촬영이 종료된 이후에는 수정하는 것도 또는 새로운 제품을 추가하는 것도 제한되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007시리즈 중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출연작으로 수많은 기대와 간접 광고주를 모았던<No Time To Die>의 경우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일이 1년 넘게 연기되면서 영화 속 제품들이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곤경을 겪은 바가 있다. 특히 Nokia와 같이 기술 발전에 따른 최신 제품을 선보여야만 하는 광고주들은 재촬영까지 요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러한 점에서 가상 간접 광고는 오직 촬영 이전 단계에만 한정되어 있던 기존의 간접광고를 사후 프로덕션 단계까지 확장하면서 그 활용성을 배가시켰다는 큰 의의를 지닌다. 기존의 영상에 가상의 제품을 배치시키는 가상 간접광고는 제품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신규 광고물의 추가나 변경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오래된 작품에도 새로운 광고를 게재할 수 있다는 점은 스튜디오나 미디어 등 콘텐츠 업계에게 광고 시장의 확대를 제공한다.
실제로 지난 2022 IAB Newfronts에서는 Amazon과 NBCU의 Peacock이 가상 간접 광고 상품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VPP의 시대를 알리기도 했으며, 한류의 인기로 인해 해외에서 과거 콘텐츠가 조명을 받고 있는 국내에서도 최근 정부 차원에서 가상 간접 광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몇몇 스타트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확장되는 VPP 업계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현실화는 가상 간접광고의 장점을 더욱 확장시킨다. 인공지능 기술은 영상 환경에 맞게 제품 이미지를 제작 또는 변경함으로써 영상 편집 과정에서 소요되는 노동력을 줄여준다. 또 콘텐츠 내 제품 배치를 더욱 자연스럽게 조정하는 등 효율성과 효과성에서 다양한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를 통해 시청자 특성에 맞는 개인화된 가상 제품 배치를 실시간으로 적용함으로써 실시간 맞춤형 VPP까지도 가능케한다. 같은 콘텐츠를 시청하더라도 시청자의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 또는 브랜드가 노출되며, 그에 따른 광고 효과의 증대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한 가상 간접광고가 점차 기존의 전통적인 PPL 산업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AI를 활용한 가상 간접광고의 경우 소규모 광고주도 활용할 수 있도록 비용적인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어, 신규 광고주의 유입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타나고 있다.
또는 광고주가 아닌 제작자 입장에서도 VPP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데, 특히 최근 그 중요성을 더하는 소규모 인플루언서에게 보다 안정적인 수입이나 제작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수많은 YouTube 콘텐츠가 간접 광고를 선보이고 있으며, <그림3> 콘텐츠의 벽면에 노출된 탄산수 브랜드 Bubly처럼 TikTok과 같은 숏폼 콘텐츠에서도 간접 광고가 적용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AI 기반의 VPP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며, 여전히 전통적인 간접 광고가 주류가 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특히 Hollywood를 포함한 일부 콘텐츠 제작자 집단은 일반적으로 VPP가 콘텐츠와의 정합성을 해치거나 부자연스러운 배치로 인해 시청자의 거부감이 발생할 위험이 높으므로 전통적인 사전 제작 간접 광고 방식이 더욱 큰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존의 간접 광고나 VPP 모두 시청자의 시청 경험을 충분하게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간 억지스럽거나 과도한 브랜드 노출로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간접 광고 사례는 기술 환경이 변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광고주의 제품이나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업계의 고민은 가장 깊은 고민을 가져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