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복지사업 비중을 35%로 늘린 첫 예산안을 발표한 가운데, 예산 심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학 교수는 문화일보 14일자 칼럼을 통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줄거리를 언급하며, 영국은 거대한 복지예산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촘촘한 복지 관리 시스템을 만든 결과 사회적 약자들은 복잡한 행정 탓에 실질적인 지원을 못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젊은 사무관 조차도 예산심사에 까다로운 기준 아래 검토하는 반면, 국회의 예산안 심의는 의원들의 무책임 아래 각자 지역구에 몇백억원씩 토목공사비를 끌어가며 치적을 홍보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윤석민 교수의 문화일보 칼럼 전문이다.

 

血稅 소중함 비웃는 '엉터리 예산'

올 한 해가 참으로 길고 힘들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과정 또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애초에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는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 세

윤석민 서울대 언론학 교수

금을 더 걷어야 하고, 노동 시장을 교란하며, 국가 재정을 불량하게 만들 수 있는 선심성 사업이 수두룩했다. 시장과 기업을 불신하고 무조건적 평등, 무상 복지를 앞세우는 진보 집권 세력의 철학이 그대로 투영된 예산안이었다.

복지사업 비중이 35%에 이르는 428조8000억 원의 슈퍼 예산으로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정 운영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복지예산 확대가 과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가? 진정한 복지의 출발점은 건강하게 돌아가는 산업과 시장임을 왜 모르는가.

영화 한 편이 백 마디 말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시절이니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관람을 강추한다. 그 유명한 영국의 선진 복지 시스템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복잡한 복지행정 탓에 스트레스를 받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다 질병으로 죽어간다. 거대한 복지예산, 그만큼 거대한 예산의 오남용, 이를 방지하려 도입된 촘촘한 복지 관리 시스템이 안고 있는 근원적 부조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예산을 한층 늘리고 관계 공무원도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영화를 오독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명색이 국민을 대표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가 허점투성이인 정부 예산안을 엄정히 따져 시정(是正)했어야 했다. 냉장고나 TV 한 대를 바꾸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신중한가? 하지만 국회의 정부 예산안 심의는 졸속 그 자체였다. 그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한 무능력, 무책임, 아전인수의 극치였다. 밀실에서 예산이 흥정 되고, 쪽지가 난무했고, 의원들은 각자 지역구에 몇백억 원씩 토목공사비를 끌어가며 이를 치적으로 홍보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정부 예산 지원을 확보하려 애써 본 사람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필자의 경험이다. 올 한 해 소송까지 당해 가며 팩트체크 서비스에 매달렸다. 특히, 광역·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 의원, 교육감 등 4000여 명에 이르는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한 고도화된 시스템 개발이 시급했다. 이러한 공익 목적의 연구개발비를 기업에서 지원받는 건 최근 들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등록금 동결 상태에서 정부 지원금에 의존해 근근이 살림을 꾸려가는 대학 재정에 기대는 것 역시 무망한 일이다. 결국, 정부 예산 지원이 유일한 답이다.

필자에게 필요한 건 집단지성(crowdsourcing) 방식으로 온라인 가짜뉴스를 잡아내는 3억 원의 알고리즘 개발 실비였다. 사이버 공간의 윤리와 안전 문제를 책임진 방송통신위원회 측에서 사업 필요성에 공감했다. 긴급예산 심사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고 새벽같이 세종시의 기획재정부로 달려갔다. 예산심사장은 시장통이었고 주어진 면담 시간은 채 10분이 안 됐다. 피곤함에 절어 연신 눈을 비벼대는 30대 사무관은 자료를 펼치며 설명을 시작하려는 필자의 말을 자르고 “시간 없거든요…. 이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죠? 결과치의 신뢰도는 얼만가요?” 하고 핵심을 찔렀다. 당황한 필자는 말을 더듬었고, 예산 확보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그때 절감했다. ‘국민의 혈세(血稅) 사용은 모름지기 이 정도는 엄격해야 한다.’ 

혈세! 얼마나 눈물겨운 표현인가? 근로소득이든 기타소득이든 땀과 노력 없이 얻어지는 소득은 없다. ‘국립대’ 교원 신분인 필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탓에 똑같은 회의·발표를 하고 사립대 동료들이 50만∼100만 원 받을 때 20만∼30만 원을 받지만, 그게 법이라서 따른다. 그에 따른 소득세며, 철마다 나오는 재산세·부동산세 등을 하루라도 일자를 어길세라 꼬박꼬박 낸다.

지난 6일 새벽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은 이렇게 모인 소중한 혈세, 그 귀한 재원(財源)을 얻어내려 세종시로 차를 몰았던 필자, 그리고 핏발 선 눈을 비벼가며 계획안을 따져 묻던 젊은 사무관에 대한 모독이었다. 국회 심의까지 끝난 현시점에서 예산 문제를 재론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 코미디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국민이 그렇게 우스운가? 그 성난 눈빛이 정녕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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