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창출이 우리 사회와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공무원 증원보다 서비스업, 농업 등 그간 소외받았던 산업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임을 지적한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30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가 여태껏 쌓아온 제조업의 노하우를 관광지역 병원 개발, 대형 스마트팜 등 농업 및 서비스업에 도입한다면 새로운 경쟁력이자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 회장은 케이블카와 스키 리프트 등의 관광 인프라로 세계적 관광지가 된 인터라켄을 예로 들며, 과거 우리가 제조업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이나 산업단지를 만들었듯이 관광산업, 농업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실린 박병원 경총 회장의 칼럼 전문이다.
 

[朝鮮칼럼 The Column] 내가 꿈꾸는 일자리 예산

젊은이가 취직하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제때 취직해 경험을 쌓아야 그들이 이 사회의 중추가 됐을 때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차원에서 ▲11조원 추경 편성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 공무원 증원 ▲사회복지 예산 증액을 통한 소득 주도의 내수 활성화 ▲청년 창업 지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재정 지출은 '공사를 위한 공사'조차도 일정 부분 내수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직접적 효과만 놓고 보면 이런 일자리 창출 효과는 재정 지출이 끝나면 사라진다. 이런 일자리들을 두고 자생력이 없고, 돈을 쓰는 일자리이지 돈을 버는 일자리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에서도 고용 증가 280만 개 중 110만 개 이상이 보건 및 사회복지 분야에서 늘어났으며, '취업 대신 창업'도 이미 오래된, 할 만큼 하고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무원 증원은 반영구적인 재정 소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너무 많이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참으로 오랫동안 제조업만으로는 필요한 일자리를 다 만들 수 없으며, 서비스 산업과 농업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무(無)에서 세계 최강 반열의 제조업을 일으킨 전략·전술·정책을 서비스업과 농업에도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해 왔다.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를 일으킬 때 민간이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을 때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필요한 투자를 했고(철강·정유 등), 민간의 힘이 부칠 때는 정부가 기본 인프라를 확충해서 비용을 낮추어 주고 (인력 양성, 사회간접자본 등), 심지어는 기초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를 서비스 산업과 농업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의료 인력의 우수함을 생각하면 의료를 미래 주력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민하게 대처하기만 한다면 중국 환자만 잘 유치해도 병원들이 터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의사·간호사를 비롯한 각양각색 수많은 일자리는 생각만 해도 즐겁다. 다만 병원은 외국인 전용 병원이라고 할지라도 투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출연(기부)에 의해서만 지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규제 때문에 병원을 지을 돈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어차피 투자를 허용해도 투자하겠다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차라리 나라가 몇조원 정도를 '출연'해서 인천경제자유구역, 제주특별자치도 등에 국제 경쟁력 있는 병원을 몇 개 지어볼 수는 없을까?

소득 수준 향상으로 중국의 농산물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이미 2004년에 농산물 순수입국이 된 것을 감안할 때 우리가 질 좋고 안전한 농산물, 식품을 생산할 수만 있다면 수요는 무궁무진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몇몇 대기업이 '수출하는 농업'을 시도했으나 "농민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비난 때문에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한 5조원 정도 예산을 투입해 새만금을 중심으로 가능성이 큰 지역에 네덜란드를 능가하는 5000억원 단위 스마트 팜을 10개 정도 만들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취약한 관광 인프라 때문에 프랑스·이탈리아 명품이나 팔아주고 있는 관광산업의 실태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랜드캐니언이 없는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치더라도 우리가 쫓아내서 상하이로 간 디즈니랜드 같은 인조 관광자원은 만들 수 있다. 100억원 투자로는 인근의 관심밖에 끌 수가 없다. 수천억원을 들이면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길 것이다. 피라미드나 루브르 궁전 같은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관광 거리(attraction)를 만들려면 아마도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관광산업에서 이런 것들이 인프라다. 등반 전철과 비롯한 촘촘한 케이블카, 스키 리프트 등의 관광 인프라가 인터라켄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에게 생업의 바탕이 되고 있다. 민간업자가 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하면 차라리 나라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투자해야 한다. 제조업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이나 산업단지를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하자는 것이다.

이런 대규모 사업은 타당성 조사, 설계, 토지 매입, 공사 등을 거쳐 실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빨리 착수해야 현 정부의 임기 내에 일자리 창출 효과가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 편성은 끝났지만 국회 심의 과정이 남아있다. 사업 착수에 필요한 초년도 예산은 소액에 불과하므로 아직 늦지 않았다. 일단 타당성 조사비라도 반영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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