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환경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환경오염이나 지구 가열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예술가의 출발점이다. 비록 아마추어 수준일지라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으로도 환경 예술을 시작할 수 있다. 누군들 초장부터 꾼이 되었겠는가?

참혹한 새의 모습으로 환경 문제에 경종 울린 크리스 조던

미국의 환경 예술가 크리스 조던(Chris Jordan, 1963-)은 환경 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는 사진, 다큐멘터리 영상, 개념 미술, 비디오아트를 넘나들며 환경 문제를 고발해 왔다. 현대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면서도 이면의 문제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고발해 온 그는 세계 곳곳에서 120번이 넘는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을 정도로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가 ‘시에라클럽 안셀 애덤스상(The Sierra Club's Ansel Adams Award for Conservation Photography(보존 사진부분, 2010)을 비롯해, ‘UN 그린리프상(United Nation's Green Leaf Award, 2007)’, ‘픽텟 심사 대상(Prix Pictet Commission Prize, 2011)’ 같은 저명한 환경 예술상을 수상한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장편 다큐멘터리 <앨버트로스(Albatross)>(2018)로 세계보건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의 문화예술기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는 저술을 통해서도 현대의 환경 문제에 경종을 울렸는데, 사진집으로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Intolerable Beauty)』, 『숫자로 본 미국인의 자화상(Running the Numbers. An American Self-Portrait)』 등이 있다. 그의 환경 예술 세계로 들어가 보자.

크리스 조던의 대표 사진인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들(Midway: Messages from the Gyre’ 편(2011)을 보는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는 미드웨이 섬에는 비행이 가능한 조류 중에서 가장 큰 앨버트로스가 산다. 이 새의 날개 길이는 3-4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큰 날개로 하늘을 훨훨 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데, 이 앨버트로스가 미드웨이 섬에서 해마다 수천마리씩 죽어간다고 한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드웨이 섬에서 8년 동안 머물며 앨버트로스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언뜻 보면 설치 미술품으로 오인할 수도 있겠는데, 어린 앨버트로스의 배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실제로 찍은 것이다. 어린 앨버트로스의 죽음을 포착한 이 참혹한 장면은 우리가 버리는 플라스틱이 새에게는 독이 된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죽은 새의 뱃속에 꽉 찬 플라스틱 조각을 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들’1 편 (2011). 이하 모든 그림의 출처는 크리스 조던의 홈페이지(https://www.chrisjordan.com/)임.
△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들’1 편 (2011). 이하 모든 그림의 출처는 크리스 조던의 홈페이지(https://www.chrisjordan.com/)임.
△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들’2 편 (2011)
△ ‘미드웨이: 자이어의 메시지들’2 편 (2011)

크리스 조던은 기존의 예술작품을 바탕으로 플라스틱으로 재현함으로써 환경 위기를 환기하는 시리즈를 2011년에 다수 발표했다. ‘비너스(Venus)’ 편은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을 바탕으로 240,000개의 비닐 봉투로 구현한 작품이다.

이 숫자는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소비되는 비닐 봉투의 추정치와 같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상징으로 통하는 비너스가 비닐 봉투로 구현돼 또 다른 <비너스의 탄생>이 탄생했으니, 이를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 ‘비너스(Venus)’ 편 (2021)
△ ‘비너스(Venus)’ 편 (2021)

 

라이터, 페트병, 플라스틱 숟가락 등으로 명작 패러디해 환경 문제 환기

작가는 밤하늘의 별도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자이어(Gyre) Ⅱ’ 편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패러디했다. 일회용 라이터 5만개로 만든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앞으로는 밤에 별이 빛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회용 라이터 5만개는 전 세계의 해양 1평방 마일에 떠다니고 있을 플라스틱 폐기물 조각의 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은 이제 꿈과 서정의 세계를 잃어버린 것 같다.

‘자이어(Gyre) Ⅱ’ 편 (2021)
△ ‘자이어(Gyre) Ⅱ’ 편 (2021)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캡 쇠라(Caps Seurat)’ 편에서는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문명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현대적 감각으로 패러디했다. 이 작품은 페트병 400,000개로 만들었다. 페트병 400,000개는 미국에서 1분마다 소비되는 페트병의 숫자라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일요일 오후의 나른하고 여유로운 행복한 시간을 빼앗겨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캡 쇠라(Caps Seurat)’ 편 (2021)
△ ‘캡 쇠라(Caps Seurat)’ 편 (2021)

이밖에도 매 초마다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기름의 갤런을 상징하는 48,000개의 검은색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표현한 작품인 <만족할 줄 모르는(insatiable)>, 미국에서 3초마다 배달되는 광고 우편물의 평균치인 9,960개의 우편 주문 카탈로그로 표현한 <3초간의 명상(Three Second Meditation) 같은 작품도 우리 모두에게 환경 지킴이가 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움 너머(Intolerable Beauty)>라는 주제의 전시회에서 소개됐다. 2019년 서울의 성곡미술관 전시회를 비롯해 2020년에는 울산박물관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다. 그의 전시회에서는 사진, 개념미술, 영화, 비디오아트 같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0점이 선보였다.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Intolerable Beauty)> 시리즈를 비롯해 <숫자를 따라서(Running the Numbers) I, II> 시리즈, <미드웨이(Midway)> 시리즈와 숲과 바다 시리즈가 전시됐다. 그리고 호평을 받았던 그의 영화 <앨버트로스(Albatross)>도 특별 상영됐다.

크리스 조던의 작품은 대부분 환경 보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에서는 자연과의 조화와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강조했다. 그의 작품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 윤리적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의 뒤쪽에 있는 이면 세계의 실상을 느끼게 하는 그의 예술 작품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계는 그물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먼저 자기 주변 삶터의 생태 환경부터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일상생활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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