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 벽두에 늘 얼리어답터들의 시선은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이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전세계 최신 기술과 제품이 선보이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 CES)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이벤트 중 하나인 CES는 최신 기술을 선보이는 기업 또는 국가 간 경쟁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만나는 AI
이번 CES 2024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이었다. 이미 ChatGPT의 공개 이후 AI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난 해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안정되어 가고 있지만, 독자적인 AI 개발 또는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와의 결합을 서두르는 기업들의 결과물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CES 2024는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AI라는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기업 간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가 되었다.
실제로 다양한 기업들이 AI 관련 메시지와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예를 들어 대표적인 가전제품 기업 삼성은 ‘모두를 위한 AI’를 선언했다. LG는 ‘인공지능을 넘어선 공감지능’으로의재정의를 시도했다.
또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AI 중심 협업 모델이 발표된 가운데 일본의 혼다와 소니가 합작한 ‘소니혼다모빌리티’ 및 폭스바겐과 벤츠, BMW 등 다양한 자동차 기업들도 생성AI 기반의 음성 비서를 탑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교적 익숙한 기업과 제품이 AI를 내세우는 가운데, Rabbit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소개한 개인용 AI 디바이스 r1이 하루 만에 1만대 이상이 팔리는 등 비교적 큰 호응을 얻었다.
해당 제품은 기기 자체에 AI가 탑재된 온디바이스AI가 아닌 클라우드로 연결된 AI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자체 개발한 ‘LAM(Large action model)’을 통해 사용자의 복잡한 행동 패턴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워키토키’이다.
자체 플랫폼인 RabbitHoleWebPortal을 통해 미리 연결해둔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또는 사용자가 학습시킨 행동을 음성으로 명령할 수 있다. 시선을 끄는 디자인 외에도 이러한 편의성과 확장성을 두고서 사람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물론 r1의 인기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크기가 작아지고 저렴해진 스마트폰에 불과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r1의 인기가 시사하는 본질은 현재 일상의 중심에 위치한 스마트폰이 새로운 기기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목걸이나 안경 등의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CES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개막 전날 공개된 애플의 비전 프로(VisionPro)도 새로운 중심 기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CES에서 주목을 받은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제품들도 신체 가까이에 위치하는 만큼큰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
삼성이 공개한 볼리(Ballie)와 같은 로봇도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4년 전 반려 AI라는 명목으로 공개된 볼리는 이후 프로젝터가 추가 등으로 기능이 다양해지고 AI 성능도 개선되어 ‘AI 스크린 시대’를열 기기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홈 IoT가 주목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이제는 가정용 로봇이 새로운 일상을 책임질 것이란 전망이 가능해지는 이유이다.
이러한 디바이스 외에도 각 기업들의 자체 AI모델이나 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AI기술이 소개된 가운데, 갈수록 기술 발전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디지털 마케팅 업계 역시 변화할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 많은 디바이스와 데이터, 늘어가는 디지털 마케팅 업계의 AI 적용
다양한 디바이스에 AI가 적용된다는 것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가 확장되고,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앞서 r1이나 볼리 등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 외에도 기존의 제품에 AI가 적용되면서 활용성이 커지는 것이다.
냉장이나 먼지 흡입, 난방 등 기본적인 기능만 수행할 수 있었던 가전 제품들에 온 디바이스 AI가 적용되면서 이용자의 니즈나 사용패턴 등을 수집하고 디바이스 단위에서 학습된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모일 수 있게 된다.
또한 스피커나 스크린 등을 통해서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모든 AI디바이스가 AI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장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번 CES의 기조연설자로 세계 최대 소매 업체인 월마트의 CEO 더그 맥밀런이 나섰다는 점도 기존의 산업이 AI를 기반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마키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까지 초대하면서 신뢰도를 높인 그는 AI를 활용하여 온라인 쇼핑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감소시킬 수 있다며 AI챗봇이 관련 상품 및 정보를 추천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소매업의 미래는 검색에서 시작된다’면서 월마트가 공개한 생성형 AI검색기능은 전통 기업들의 본격적인 참여가 일상과 산업 구조 재편을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ChatGPT의 등장으로 경계를 발령한 구글의 검색 주도권이 다방면으로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제조사가 부각된다. 인공지능 기반의 기술이 발전하고,온디바이스AI가 일상화되면서 과거플랫폼사와 같은 일부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던 검색 데이터의 수집과 결과물 제시가 제조사의독자적인 OS 또는 기본 기능만으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삼성전자의 AI 스마트폰 갤럭시 S24도 이런 맥락에서 강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제조사의 데이터 주도권은 최근 개인정보 보호의 이름 아래 써드파티 제한 등으로 주목받은 애플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이들은 iOS라는 운영체제와 앱 스토어까지 보유하고 있으므로 더욱 큰 지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광고 수익의 보다 큰 증대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반면 디바이스보다는 운영체제와 플랫폼 중심의 구글은 보다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이번 CES에서 ‘better together’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구글의 부스는 자사의 픽셀 시리즈 외에도 삼성전자의 갤럭시나 LG전자의 TV등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이용하는 협력사의 기기를 전시했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도 부스에서 퀵쉐어 기능을 통해서 오랜 기간 이어진 구글과의 협력 관계가 공고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OS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과 LG 모두 오랜 기간 자체 OS의 활용성 증대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최근 삼성이 볼리에 탑재한 타이젠OS외에도 생성형 AI ‘삼성 가우스’와 온디바이스 AI ‘갤럭시 AI’ 등을 선보이는 등 협력 업체들의 독자적인 움직임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기존의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아닌 새로운 디바이스 기반의 새로운 운영체제가 기존의 안드로이드와 iOS가 양분한 일상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CES의 한 켠에서 쿠키 수집 제한 이후의 시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인공지능 및 메타버스 기술스타업인 퓨처버스의 공동창립자 샤라 샌드오프는 쿠키의 분산 버전인 ‘도넛(Doughnuts)’을 소개했다.
중앙이 없는 분산형 (탈중앙화)구조에 기인하여 명명된 도넛은 소비자가 브랜드에게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일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골자로 한다. 해당 기술이 단기간 내에 기존 디지털 마케팅의 중심이었던 쿠키를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Web3와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들의 안정화가 쿠키리스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헬스케어나 모빌리티 등 정말 다양한 기술들이 공개된 이번 CES는 디지털 마케팅 업계에도 다양한 의미를 제시한다. 과거에도 기술 발전이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CES의 화두였던 인공지능은 소비자와 일방적 관계만 구축할 수 있었던 기존의 제품들이 모두 새로운 미디어이자 데이터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분간 이러한 기술 변화에 보다 민감한 대응이 가능한 준비가 필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