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문제가 안 될 행동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협박이나 강요, 공갈 같은 무시무시한 법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아도 어떤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다 안다. 힘 있는 자가 상대방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 드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Q : 기존 매체와는 별개로 증권·주식 등의 기업 관련 정보를 다루는 매체를 만들어 유료회원제로 운영하는 언론사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이러한 매체 중 일부는 문제 있는 기사의 정정 내지 삭제를 요청하는 기업을 상대로 회원 가입을 요구한다. 문제는 회원 가입비가 만만치 않은 고액이라는 점이다. 기사의 정정 내지 삭제가 급한 기업의 처지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에 법적 문제는 없는 것인가?

A : 유사언론행위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언론이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기업이나 관청을 상대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행태는 참 다양하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부정적인 기사를 쓴 후 광고나 협찬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행태이겠지만 이 외에도 보도예정사실을 고지한 후 광고 및 협찬을 요구하기도 하고 비판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광고·협찬을 요구하기도 한다. 유사언론행위에 고액의 유료회원 가입을 새로운 유형으로 추가해야할 것 같다. (참조: ‘유사언론행위’와 공갈죄 성립 여부')

질의한 내용은 디테일 면에서 기존 유사언론행위와 약간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언론이 자신이 가진 힘을 악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고액의 유료회원제 가입 권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원리, 그러니까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권유를 받은 기업 입장에서는 거절할 자유가 있다. 거절한다 해서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가입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가 없는 상황 하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심지어 이 기사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기업은 해당 언론사에 기사의 삭제 또는 정정보도를 요청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가 고액의 유료회원 가입을 권유한다. 말이 좋아 권유이지, 가입을 권한 언론사도, 받은 기업도 권유가 아니라는 것을 다 안다.

특히 언론사는 자신들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좁다.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평소처럼 편익을 고려해 가입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기 어렵다. 고액의 유료회원 가입 권유를 받고 고민한다는 사실 자체가 언론사와 기업의 관계가 결코 대등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이때 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회원 가입 전후라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회원 가입 전이다. 잘못된 기사로 피해를 본 입장에서 언론사의 요구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보도 일시와 기사 제목, 기사의 요지 등으로 문제되는 기사를 특정할 수만 있다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을 비롯하여 소송이나 고소 등 현행법 하에서의 법적인 조치가 대부분 가능하다.

당사자 간 해결이 가장 이상적인 분쟁해결방법이지만 항상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가해자 측에서 피해자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하려 드는데 굳이 내게 불리한 판 위에서 싸울 이유가 없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고 새로운 판 짜는 것을 적극 고려해봐야 한다.

유료회원제로 운영하는 매체 기사라고 해서 일반 기사와 다를 점이 전혀 없다. 똑같이 정정보도나 기사삭제청구의 대상이 된다.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좋게 해결할 생각이 아니라면 정정보도나 기사삭제를 얻기 위해서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회원으로 가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편 고액의 유료회원 가입 권유 자체가 강요죄 내지 공갈죄에 해당될 수도 있다. 강요죄는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고, 이 의무 없는 일이 재산처분행위에 해당하면 공갈죄가 된다. 좀 더 구분해서 본다면, 단순 회원가입은 강요죄에 해당되고 가입비 지불이라는 재산처분행위는 공갈죄가 된다.

다음으로, 회원 가입 후다. 회원 가입을 통해 기사의 정정 내지 삭제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숨을 돌렸으니 상황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회원 가입에 따른 고액의 비용 지출은 법적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

민법에서 상대방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한 현저한 불공정 법률행위는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제104조). 이러한 규정을 질의한 상황에 대입해보면, 회원 가입에 따른 비용지출이라는 법률행위에는 그 재산처분행위를 무효화시킬 만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출한 비용의 반환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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