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물의 난간(欄干)에 매달려 있으면 늘 위태로워 보인다. 지구가 우주의 난간에 매달려 있는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부산작가회의에 소속된 시인들은 지구의 비명에 귀 기울이자는 뜻에서 무크지 <시움>의 이름으로 176쪽에 이르는 기후시집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전망, 2023)를 펴냈다. 지구가 난간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비유는 위태로운 지구 환경 문제를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시인 62명의 절실한 목소리가 담긴 이 시집에서는 환경인문학의 생태 시가 지구를 식혀주는 물 한 방울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 전망의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 표지 (2023)
△ 전망의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 표지 (2023)

시집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들어가며’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나무도 풀꽃도 메뚜기와 거북이도 펭귄과 거북이도 모두 지쳐 생명의 빛을 잃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저 당혹스러운 이상사태. 불치의 병으로 타오르는 고통. (... 중략...) 왜 사람들은 벼랑 끝인 줄 알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가. 문명의 편리 속에 감춰져 있는 파탄의 위기를 왜 감지하지 못하는가. 불편을 선택할 용기는 없는가. 이제 자유도 정의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인류의 선택이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이 시집에는 세계 곳곳으로 번져가는 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시인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무크지 시움의 시인들은 문학의 예지를 강조하며, 문학이 폭력적 현실에 맞서 시대적 가치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집에 수록된 시 중에서 고명자 시인의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2023)은 제목부터가 낯설지 않다. 시인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를 차용해 시 제목으로 패러디했음이 분명하다.

도킨스는 그 책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DNA나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선언하며,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라고 정의했다. 인간이란 유전자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먹고 살고 사랑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밈(meme, 문화적 유전자)이란 용어도 인간의 이기적 행동을 연장한 개념이었다. 어쨌거나 고명자 시인은 도킨스의 책 제목에 ‘지나치게’라는 말을 덧붙여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이란 시 전문을 살펴보자.

“수박만 한 우박이
야구공만 한 우박이
아기 주먹만 한 우박이
고양이 눈알만 한 우박이

지구의 머리통들이 깨져도
세계의 유리창들이 박살나도
중동의 오일 쇠파이프가 뚫려도
미래의 사과나무가 찢겨나가도

미국 땅의 회오리는 미국 땅의 회오리

아프리카의 모래폭풍은 아프리카의 모래폭풍

후쿠시마 핵 오염수 마셔도 된다고?
죽나 사나, 사나 죽나 그까짓 것 멸망해 봐야 안다고?

부산 시청 앞마당 초록공원 꽃이 만발 나무는 줄 맞춰 푸르러간다
섬뜩해라, 나비, 벌, 벌레 한 마리 눈 씻고 봐도 없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새들에게 하늘권을 돌려줘라 외치지만
사람들만 발 빠르게 들어간다, 나온다
무슨 약정서처럼
플라스틱 커피 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그렇다면 하늘 가리는 나무 모가지들을 댕강 쳐내야 한다고?
아파트의 높이는 구름층에 가까울수록 좋다고?

2023. 7. 3.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로 기록됐다 하는데
대여섯 살 아이가 뙤약볕 아래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데
손바닥에 콩벌레 한 마리 올려놓고 잔지러진다
엄마도 그 누구도 울음을 달래지 못 하네
죽은 벌레를 위한 가장 슬픈 장송곡이었네”

시에서는 기후 위기의 문제를 명확히 짚어내며, 사람들이 이기심으로 가득하다면 기후 위기가 가속화돼 처참한 파멸을 맞이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시인은 우박의 크기를 수박, 야구공, 아기 주먹, 고양이 눈알에 비유하며 이상 기후 문제를 경고했다.

더욱이 머리통이 깨지고 유리창이 박살나거나 기름 파이프가 뚫리고 사과나무가 찢겨나가도, “미국 땅의 회오리는 미국 땅의 회오리”이고 “아프리카의 모래폭풍은 아프리카의 모래폭풍”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남의 일로 치부해버린다면 결국 모든 피해를 자신이 감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눈 씻고 봐도 벌레 한 마리 없는 섬뜩한 환경에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새들에게 ‘하늘권’을 돌려주라고 아무리 외쳐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플라스틱 커피 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건물에서 나오거나, 구름층에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에 대해서도 시인은 나무란다.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에 어린 아이가 뙤약볕 아래서 손바닥에 죽은 콩벌레 한 마리를 올려놓고 잔지러지는 광경을 떠올려 보라.

‘잔지러지다’는 고통이나 놀라움으로 까무러칠 듯이 몸을 비틀며 떠는 모습을 묘사하는 우리말이다. 시인은 잔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은 죽은 벌레를 위한 슬픈 장송곡인데, 엄마도 그 누구도 아이 울음을 달래주지 못 한다고 진단했다.

시를 활용한 환경 캠페인에 대한 아이디어

시에서는 환경 보호 메시지를 현대인의 이기심에 빗대 표현하며,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에게 준엄한 메시지로 경고했다. 이 시를 활용해 환경 인문학적 차원에서 마케팅 활동을 시도할 수 있다.

시에 플라스틱 잔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무슨 약정서처럼 “플라스틱 커피 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건물로 발 빠르게 들어갔다 나오는 상황에서, 전국의 커피숍에서 1회용 플라스틱 잔을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환경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다.

커피숍 입구에 시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을 붙여놓고, 1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지 말고 텀블러나 개인용 머그잔을 쓰자고 안내하고, 캠페인에 참여할 경우에 200-400원을 환불해준다면 참여율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마치 SK텔레콤의 ‘해피해빗(happy habit)’ 캠페인과 같은 취지다. 커피 전문점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지 말고 텀블러나 개인용 머그잔을 쓰자는 캠페인 말이다.

기후시집 『지구는 난간에 매달려』에는 이밖에도 <썩을 놈>(김형로), <북극곰>(최정란), <플라스틱 고래 관찰기>(김사리), <4월 22일, 기후 진맥 시계>(김요아킴), <불편하게 살자>(김종미), <수몰 지구>(이소희) 같은 지구의 위기를 소환하는 여러 시가 있다.

고명자 시인이 도킨스의 책 제목에 ‘지나치게’라는 부사를 덧붙여 이기적 유전자 덩어리인 사람들을 비판한 시를 쓴 것은 ‘지나치게’ 타당한 시어의 선택이었다. 환경 문제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데도 타인의 일로 치부한다면 도킨스의 주장처럼 인간은 역시 맹목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기계에 불과할 것이다.

지구는 우주의 난간에 매달려있고 우리는 지구의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러하다. 시인들의 말처럼 이제 자유도 정의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면 컵 재사용 캠페인을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 한 편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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