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불 속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듯, 환경 예술가가 빙하에 뛰어든다면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환경 인문학의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수록 인류를 구할 가능성도 커진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2016년 6월 17일에 노르웨이 스발바르(Svalbard)섬의 빙하에서 자신이 작곡한 <북극의 비가(悲歌, Elegy for the Arctic)>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기후 변화로 녹아내리는 빙하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빙하를 배경삼아 콘서트 무대를 만들었다. 바다에 실제로 떠다니는 유빙과 하얀색 삼각형 나무로 만든 인공빙하를 무대로 활용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1955~)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로서,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10대 시절에 포크 기타를 연주하며 작곡을 시작한 그는 밀라노의 베르디음악원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해 1982년에 작곡 학위를 받았다.

영화 <블랙스완>과 <언터처블: 1%의 우정>의 삽입곡이나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닥터 지바고>의 삽입곡을 작곡해서 더 유명해진 그의 음악은 잔잔한 명상 시간 같다는 특성이 있다. 그는 지구 온난화를 비롯해 환경 위기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사라져가는 북극의 운명...<북극의 비가(悲歌)>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의 커다란 빙하 조각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실제로 빙하가 연주자의 눈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에이나우디는 녹아내리는 북극의 유빙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에도 빙벽이 무너지고 물에 걸친 유빙이 바다로 가라앉았지만 그는 연주를 이어갔다. 그토록 위험한 곳에서 어떻게 연주회를 할 수 있겠나 싶은 우려와 두려움이 그 연주회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숨은 복선이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존재들을 위해 그가 작곡한 애절한 선율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연주회는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북극을 지켜라’ 2016 캠페인의 일환으로 3분 13초 분량의 유튜브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2DLnhdnSUVs)으로 도 제작됐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의 빙하를 배경으로 촬영한 이 콘서트 영상은 사람들에게 “예술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도록 문제를 제기했다. 연주하는 동안에도 북극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는 장면도 영상에서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보는 순간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녹아내렸을 것이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모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모습

그는 사라져가는 북극의 운명을 생각하며 <북극의 비가(悲歌)>를 작곡했다고 한다. 작곡을 마친 후에도 빙하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까지 그는 숱한 난관에 봉착했다. 노르웨이 인근의 북극해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옮겨 설치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빙하를 닮은 플랫폼을 특별히 제작해 바다에 띄우고 그 위에 피아노를 옮겼는데, 그가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근처에서 빙하가 무너졌다. 그에 따라 엄청난 파도가 몰려와 피아노까지 휘청거렸다. 극한의 추위 때문에 피아노의 음정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10분마다 언 손을 녹여가며 연주를 계속했고, 48시간을 버틴 끝에 촬영을 마쳤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어김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를 비롯해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북극의 슬픈 현실을 생생하게 알려주기에 충분한 음악이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빙하가 녹아내리는 소리부터 다양한 자연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피아노 선율과 함께 흘러나왔다. 연주를 마친 에이나우디가 가만히 앉아 북극해를 바라보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8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극 보호를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했지만, 북극을 보호하기를 원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높여 북극을 보호해 주세요.” 유튜브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이런 자막은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였다.

지구 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해 북극의 빙하는 지난 30년 동안 100만㎢에 해당하는 면적이 녹아 사라졌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및 덴마크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면적이다. 2023년 3월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58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는 2050년 이전에 적어도 한 번은 북극의 빙하가 사실상 사라진다고 진단했다. 에이나우디가 <북극의 비가>에서 강조했던 내용을 국제 기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격이 되었다. 북극의 빙하는 계절에 따라 면적이 줄었다 늘기를 반복하는데, 2050년 이전에 최소 한 번은 빙하가 모두 녹아 버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북극의 빙하에서 를 연주하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 출처: 그린피스(2016)의 캠페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DLnhdnSUVs)
북극의 빙하에서 를 연주하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 출처: 그린피스(2016)의 캠페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DLnhdnSUVs)

우리 기업이 에이나우디를 초청, 연주회를 가지면 어떨까? 

환경 인문학이 지구를 구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과학이 기후 변화의 진실을 밝혀준다면, 환경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대의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에이나우디는 비가(悲歌, elegy)로 환경 인문학을 실천했다.

영문학에서는 엘레지를 죽은 자를 위한 애도나 슬픔을 노래한 문학으로 설명한다. 엘레지를 넓은 의미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다루는 시들을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슬픈 서정시를 가리키며 애가(哀歌)라고도 부른다. 에이나우디는 빙하에서 북극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를 연주했다고 할 수 있다.

에이나우디의 피아노 선율을 통해 우리는 북극의 슬픈 운명을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는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거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는 그를 초청해, 얼음이 꽁꽁 언 한강에서 ‘지구의 온도’ 같은 주제로 피아노 연주회를 개최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지구 환경의 위기 문제를 더 생생하게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연주하고 그 과정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면 된다. 기업이나 공공단체에서 이런 공공 캠페인을 추진해보면 좋겠다. 그를 초청하는 비용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충당하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비용만 지급하고 재능기부를 요청해도 된다. 기업이나 공공단체의 강한 추진력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반론보도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