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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CEO 래리핑크(Larry Fink)는 2020년 1월 투자자들과 기업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앞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투자 결정의 기준으로 삼겠다”라고 선언했다.

래리핑크의 언급을 신호탄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ESG라는 경영전략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기업이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의미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SG의 제도적 관점을 대표하는 이론적 토대는 ‘정당성 이론(legitimacy theory)’이 대표적이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시장의 공공성이 점차 중요해지는 기업사회에서 ESG는 사회·정치적 당위성에 주목하며 윤리학의 의무론적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ESG의 제도적 관점을 대표하는 이론적 토대, ‘정당성 이론’

정당성 이론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당성이 확보될 때 존립할 수 있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정당성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기대와 압력에 부응하기 위해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당성 이론을 지지하는 선행연구에 따르면, 정당성 압력을 많이 받는 기업일수록 ESG 경영을 실천하고 그에 대해 정보를 공시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도 더 적극적임이 나타났다(이지연·김도윤·신동엽, 2021). 또한 기업 규모가 크거나,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거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B2C 기업일수록 가시성(visibility)이 높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ESG 활동에 적극적인 편이다(윤태일·변혜영, 2020).

한편, 기존의 선행연구들은 이러한 속성을 갖는 기업이 정당성 압력을 받아 ESG를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뿐, 정당성 압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미시적 규명은 별로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연구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본 연구는 이해관계자의 정당성 압력에 대응하여 기업이 ESG를 통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가를 실무자와 면담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였다.

실체 없는 '정당성' 확보... 내용 비슷비슷한 '동형화'와 디커플링 문제 대두 

FGI 조사결과, 기업의 정당성을 실행함에 있어 두 가지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나는 정당성 압력에 대응하여 기업이 ESG 경영을 채택함으로써 그것이 제도로 정착되고 그 결과 ESG 활동에 대한 기업 정보공시의 내용이 대부분 비슷해지는 동형화(isomorphism)현상이다.

또 하나는,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정보공시 같은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실체와 일치하지 않고 괴리를 일으키면서 친환경적인 기업 이미지로 세탁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 혹은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나타난다.

ESG를 통한 상징적 정당화와 디커플링 문제의 원인으로는 보고서 작업 시 외부 컨설팅 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GRI와 같은 국제적 기준에 맞춰 작성해야 하므로 전문적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보니 내용이 거의 비슷해진다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은 ESG 경영활동 자체에 대한 컨설팅보다 ESG 보고서 제작에 주목하여, 이러한 기이한 시장구조가 격화되고 있다.

"연간 100여 개의 보고서 중에 컨설팅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발간하는 기업은 15-16개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지속가능경영에 관한 컨설팅이 존재하나 이는 보고서가 아닌 전반적인 전략에 관련된 것들이지, 보고서에 관한 컨설팅은 발달하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컨설팅이 지속가능경영 컨설팅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컨설팅기업 종사자, 남)

이를 위해서는 너무 평가에만 연연하지 말고,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면서 진실한 보고서로 이해관계자와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오기 위한 첫 단추는 중대성 평가를 잘해야”하며 “기업에서 진정성을 갖고 다해야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협회종사자, 남).

"빨간불일지라도 보고서에는 좀 보여주면서 ‘우리가 앞으로 3년 안에 노란불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진짜 지속가능한 경영이 되는 거지. 빨간불 다 빼버리고 녹색불만 쫙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죠" (건설회사 종사자, 남).

향후 방향성은?

연구의 발견사항을 바탕으로, ESG를 통한 기업 정당성 확보의 개념적 모형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ESG의 실행동기·목표는 정당성 압력에 대응하는 차원이 크며, 특히 경제적 효과를 염두에 둔 실용적 정당성 확보가 주요 목표이다.

요약하자면, 정당성 압력은 여러 가지로 유형화되며, 이러한 압력에 대응하여 실체 없는 ESG 경영 노력과 성과를 가장 왜곡하는 디커플링 위험성을 경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당면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이 모든 과정의 전제가 되어야한다.

출처: 윤태일(2020). 기업은 ESG를 통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가?
출처: 윤태일(2020). 기업은 ESG를 통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선방향으로는 첫째, 데이터의 전략적 관리이다. ESG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전략의 부재로 여러 가지 ESG 실적을 나열할 뿐, 타겟과 컨셉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중대성 평가를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요구된다.

"정확하고 일관되게 데이터를 구조화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전략이 부족하다 보니 데이터가 흔들리고 튀는....”(철강회사 종사자, 여)

둘째 데이터 및 용어상의 혼란은 평가지표의 혼란 문제와 연결되는 측면으로, 기관마다 다른 평가지표의 통일성 문제를 해소해야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데이터를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다 보니 한국기업이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실에 다들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슈가 많은데 그중에서 크리티컬한 이슈가 ESG 평가기관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겁니다. 지표들도 다르고, 지표를 평가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예컨대 구성원 안전에 대한 지표가 있다고 치면요, 구성원 안전지표에 대해서 A평가사로부터는 최우수 등급을 받은 회사가 B사로부터는 보통 등급 정도밖에 평가를 못 받는 경우가 있거든요"(화학기업 종사자, 남)

마지막으로 언론의 역할도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ESG가 붐을 이루면서 언론에서 해당 이슈를 많이 다루는 것을 체감하는데, 단기간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도록 언론이 균형 잡힌 시각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언론을 비롯하여 평가기관 및 정부, NGO 등에서 정당성 압력이 실효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기업의 ESG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견인할 때, 한국기업은 글로벌 환경에서도 정당성 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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