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자체는 작은데 그것을 증폭시키는 구조나 환경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언론계에 존재하는 ‘받아쓰기’ 관행이 그러하다. 규모나 인지도에 관계없이 대다수 언론들이 통신사 기사는 물론이고 타사의 기사를 받아쓴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오보는 대형 오보로 발전한다. 받아쓰기 관행과 법적 책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Q : 어느 언론사에서 단독보도를 하면, 다른 언론사들이 받아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첫 보도가 오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받아쓴 기사들이 전부 오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피해를 본 회사나 기관은 어느 언론사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첫 보도를 낸 언론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아니면 받아쓴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A :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초 보도를 한 언론사뿐만 아니라 받아쓴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정정보도나 기사삭제를 청구할 수도 있고,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받아쓴 기사’라는 프레임에 갇힐 이유가 없다. 직접 취재해서 쓴 기사든, 받아쓴 기사든 모든 기사는 어떤 식으로든지 편집권을 행사한 결과이며, 편집권자인 언론사에 책임이 귀속되기 마련이다.

미국에 ‘소문전달자는 소문날조자와 마찬가지로 나쁘다(Tale bearers are as bad as tale makers)’는 격언이 있는 것을 보면, 언론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통신뉴스의 항변(wire service defence)’이라는 것이 있다. 통신뉴스의 항변이란, AP나 UPI, 로이터와 같은 유수의 통신사 기사를 전재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비록 그 전재한 기사가 오보일지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칙이 변형·발전되어 통신사 기사가 아니라 신뢰성 있는 언론사 기사를 인용보도한 경우에도 면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점은 통신뉴스의 항변이 우리 언론에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통신뉴스의 항변을 허용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수십 배나 큰 영토를 가진 미국에서 모든 언론사들이 자체 취재인력으로 모든 뉴스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취재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역 매체는 해당 지역의 이슈에 집중하고,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주요 이슈는 공신력 있는 통신사 기사로 메꾸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게티 이미지뱅크 자료
△ 게티 이미지뱅크 자료

이런 미국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영토가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 언론사들에게 통신사 기사는 미국처럼 필수적이지는 않다. 또 그동안 문제되었던 대다수 받아쓰기 기사들은 받아쓸 만큼의 가치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엇보다, 언론사들이 무작정 받아쓰지 않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오보를 피할 수도 있는 사안들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필요에 의한 받아쓰기가 아니라 안일하고 타성에 젖은, 불성실한 받아쓰기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법원에서 채택하고 있는 ‘통신뉴스의 항변’이 우리 법원에서는 거의 채택되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에 대한 신뢰 역시 우리나라와 미국이 제법 차이가 크다. 미국의 법원은 공신력 있는 통신사나 언론사 기사에 대해서는 그 내용에 대한 신뢰를 법적으로 보호해준다. 타 언론사나 통신사 기사 내용을 가감 없이 인용보도하면 설령 그 내용이 오보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인용한 언론사는 면책을 받는다. 이것은 언론의 기사를 신빙성 있는 자료로 간주함을 의미한다.

우리 법원은 언론보도에 그렇게까지 높은 신빙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일례로, A언론사와 B통신사 간 체결된 뉴스콘텐츠 제공계약에 따라 B통신사 기사를 전달받은 A언론사가 그대로 보도한 사안에서 법원은 “피고 A언론사가 소외 B언론사로부터 기사를 전달받아 게재하였더라도 … 피고 A언론사 스스로 위와 같이 사실 확인 노력을 하지 아니한 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였음이 인정되는 이상, 피고 A언론사가 B언론사로부터 이 사건 기사를 전달받아 웹사이트에 그대로 게재하였다는 사정이 피고 A언론사의 언론사로서의 주의의무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것은 전혀 아니”라고 판시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8. 17. 선고 2016가단24094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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