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쓴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견리망의' [교수신문 자료]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쓴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견리망의' [교수신문 자료]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를 꼽았다. 지난 10일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견리망의는 396표(30.1%)를 받아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견리망의는 장자의 산목편에 나오는 말로 ‘눈 앞의 이익에 사로 잡혀 자신의 참된 처지를 잊는다’는 의미다. 견리망의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견리망의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치란 본래 국민들을 '바르게(政=正)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고사로 보는 리더십에서는 견리망의와는 반대로 이익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다 과로로 요절한 중국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의 삶을 들여다 본다.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 견리사의(見利思義/이익을 보면 의로운지 먼저 생각한다)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는 주인공인 촉나라 소열제 유비가 이릉대전으로 사망한 후, 승상인 제갈량을 제2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제갈량이 이끌어야 하는 촉나라는 이릉대전 패배의 여파로 패망하기 직전이다.

이릉대전에서 사망한 촉군은 8만명으로 추산된다(유엽전 기록). 이는 촉나라 군의 절반으로, 촉군을 이끌던 주요 장교들도 대부분 사망하거나 다른 나라에 귀순한다. 신생 국가가 병력과 무관을 대부분 잃었고 후계자인 유선은 17살에 불과했다.

이릉대전 이후 촉나라와 위나라의 국력은 열 배 이상 차이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로 치면 중국과 우리나라가 일대일로 싸우면 비슷한 수준(GDP 기준)이다. 위문제 조비는 촉나라는 국력을 상실했으니 오나라와의 전쟁만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특히 이릉대전은 황제인 유비가 신하들의 반대에도 나선 출정이었다. 황제의 오판으로 패전한 결과 왕권도 크게 약화됐다. 이에 유비는 유언으로 제갈량에게 황위를 선양하겠다 공언한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유선)은 부족하니 도와줘도 안 될 것 같으면 승상(제갈량)이 대신 황위를 맡아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제갈량은 끝까지 자신을 믿는 유비에게 눈물을 흘리며 새 황제에게도 충정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제갈량은 새 황제를 위해 "고굉지력(股肱之力)하겠다"는 표현을 쓴다. 고굉지력은 ‘온 몸의 힘’을 뜻하는 말로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 드라마 사마의 : 최후의 승자 중 제갈량 (예고편 캡처 자료) 
△ 드라마 사마의 : 최후의 승자 중 제갈량 (예고편 캡처 자료) 

제갈량은 그 후 열 배 차이나던 위나라의 국력을 5년만에 따라잡고 북벌에 나선다. 남만족 등 주변 이민족을 평정하면서 농업을 발전시켜 국력을 축적하고 익주의 특산품인 촉금(비단)의 생산량을 사상 최대 규모로 키워냈다. 촉금은 외교 예물품으로 쓰일만큼 당대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의 처첩은 촉금을 입지 않으며 근검절약을 보였다고 한다.

본래도 하드워커(Hard Worker)였던 제갈량은 이릉대전 이후, 지나치게 업무에 몰입한 결과 본인은 물론 일부 동료들도 훗날 과로사로 숨진다.

제갈량을 상징하는 고사성어로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死爾後已)란 말이 꼽힌다. 위나라 정벌에 나서며 황제에게 올린 출사표에 나온 말로 ‘온 몸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치겠다’는 뜻이다. 그의 삶은 '국궁진췌 사이후이' 그 자체였다.

중국사에서 제갈량은 명재상인 장량, 관중에 비견되고는 한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재상은 제갈량이다.

이는 아마도 제갈량만큼 오늘날의 정치인과 공무원에 해당하는 ‘사대부의 낭만과 모범’을 온전히 보여준 인물은 전후무후했다. 권력을 위해 배신과 살인이 난무하던 시기였지만 황제의 자리를 탐하지 않고 군신의 의리를 지켰다. 또 진정으로 고굉진력하며 망해가던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을 구휼했다.

지식인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를 선정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제갈량이 말한 국궁진췌 사이후이의 의미를 곱씹으며 새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가 아닌 견리사의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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