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시민의 실천 행동이 물론 중요하지만 환경문제 해결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나 국제협약 등은 정치인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출신의 설치 미술가이자 거리 예술가로 유명한 아이작 코달(Isaac Cordal, 1974-)은 거리의 설치미술로 기후 위기 문제를 환기했다. 그동안 기후 위기에 대한 숱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원인을 그는 정치인들의 탁상공론에서 찾았다.

지난 2006년부터 아이작 코달은 <시멘트 쇠락(Cement Eclipses)>이라는 노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해 왔다. 그는 세계의 주요 도심에 미니어처 조각상을 설치해 현대의 소비문화를 비판하면서 도시인들의 변화를 촉구했다.

<기후 변화를 기다리는 중(Waiting for climate change)>(프랑스 낭테, 2013)이라는 설치미술 전시에 이어 <지도자를 따르시오(Follow the leaders)>(프랑스 안시, 2019)라는 설치미술 전시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 안시의 찰스보송공원(Parc Charles Bosson)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조각 군상들이 설치돼 있다. 조각상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양복을 입은 채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허리까지 물속에 잠겨 절망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해 토론만 하다가 물에 잠겨버리는 정치인들을 풍자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사회적 결속이 약해지는 현상을 상징하기 위해 ‘시멘트 쇠락(衰落)’이란 표현을 개발했다. 이 작품은 일반에 <지구온난화를 토론하는 정치인들(Politicians discussing global warming)>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제목은 <시멘트 쇠락>이었다.

△ ‘시멘트 쇠락: 지도자를 따르시오’ (프랑스 안시, 2019). (출처: Issac Cordal 홈페이지)
△ ‘시멘트 쇠락: 지도자를 따르시오’ (프랑스 안시, 2019). (출처: Issac Cordal 홈페이지)

지구온난화 문제를 서로 미루는 각국의 정치인들을 풍자

아이작 코달은 정치인들이 지구온난화에 맞서기 위해 함께 토론하는 모습을 나타냈다고 표면적인 창작 의도를 밝힌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서로 미루는 세계 각국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풍자했다.

많은 사람이 점잖게 양복을 빼입고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표정이 어둡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정치인들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기 까지 한다. 그 사이에 물은 이미 허리까지 차올라 버렸다.

아이작 코달은 비슷한 창작 의도를 표현한 작품을 2011년에 독일 베를린에 설치한 적이 있었다. 그 작품에 표현된 사람들 역시 대부분 머리까지 잠겨버린 상태였다. 그는 이 작품을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프랑스 안시에 대규모로 작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그의 설치미술은 언제나 시골이 아닌 도시에 전시됐다. 현대의 소비문화가 융성하는 곳이 도시이고, 도시야말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요 지역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를린, 바르셀로나, 벨기에, 브뤼셀, 보가타, 런던, 산호세에서 설치 미술가 혹은 조각가로서 다양한 전시회를 열었다. 여러 도시에서 전시한 작품들은 물속에 잠겨버린 인물들이 많다. 사람들이 떼 지어 환경문제를 논의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물이 차오르거나, 도시에 바닷물이 차오르자 튜브를 타고 겨우 빠져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녹는 중>(2019)이라는 설치미술에서는 여성이 길을 가다가 도시의 온도 때문에 녹아내려서 길바닥에 붙어버린 순간이나, 정장 차림의 중년남성이 녹아내려 아스팔트에 붙어버리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 ‘시멘트 쇠락’ (독일 베를린, 2011) 및 ‘녹는 중’(2019) (출처: Issac Cordal 홈페이지)
△ ‘시멘트 쇠락’ (독일 베를린, 2011) 및 ‘녹는 중’(2019) (출처: Issac Cordal 홈페이지)

시멘트 쇠락... 환경, 경제, 교육 등 사회 전반 풍자

아이작 코달은 작은 조각품을 사려 깊게 배치함으로써 거리의 조각품을 보며 지나가는 보행자의 상상력을 확장했다. 이밖에도 그의 설치미술은 도시 중심부의 거리뿐만이 아니라 도시 건물의 홈통, 건물 꼭대기, 버스 정류소 꼭대기 같은 곳에도 전시됐다.

남성과 여성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 동작이나 포즈로 형상화됐는데, 이런 형상을 통해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환경 문제를 환기하고자 했다. 그는 환경문제에 관한 작품 외에도 경제 체제, 교육 등 사회 전반을 풍자하는 조각 작품을 만들어 왔다.

‘시멘트 쇠락’은 과잉 소비를 일삼는 인간 행동에 대한 비판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멀어진 관계를 복원하는데 집중되었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공공 분야에서도 아이작 코달을 초청해 대도시의 설치미술 전시회를 개최하면 어떨까 싶다. 그의 설치미술은 기후위기를 환기하는 최고의 설치미술이므로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시멘트 쇠락> 연작의 일환으로 한국판 <시멘트 쇠락>이 창작된다면 우리나라의 ESG 인식 확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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