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만 있다면 일상의 모든 것들을 환경인문학을 환기하는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브라질의 환경 예술가 넬레 아제베두(Néle Azevedo, 1950~)는 얼음의 활용에 주목했다. 그녀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예술 작품을 통해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2001년에 얼음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지난 2005년의 브라질 상파울루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일본 도교,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페루 리마, 이탈리아 피렌체 등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얼음 인간’ 조각 전시회를 열었다. 얼음 인간이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8년의 피렌체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 그녀는 ‘녹는 인간(Melting Men)’이라는 제목의 얼음 인간을 소개했는데, ‘녹는 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넬레 아제베두의 ‘얼음 인간’ 조각 전시회1
넬레 아제베두의 ‘얼음 인간’ 조각 전시회1

그녀는 2009년 9월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자연기금(WWF) 회의장의 건물 계단에 얼음 인간을 전시했다. 2012년 8월에는 칠레 산티아고의 한 대학 계단에 얼음 인간 1,000개를 전시하며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널리 알렸다. 2014년 8월 18일에는 영국 버밍엄 시의회광장 계단에 ‘얼음 인간’ 5,000개를 선보였다. 작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얼음 인간은 ‘최소의 기념비(minimum monument)’로 불린다.

최소의 기념비는 도심 한복판에 작은 얼음으로 만든 사람 조각상을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설치하는 프로젝트다. 거의 모든 얼음 인간은 도시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30분 이내에 녹아내린다. 얼음 인간이 녹아내리는 장면은 마치 대재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 현장 같다.

넬레 아제베두는 기후회의가 열릴 때마다 개최 도시를 찾아가 얼음 인간 전시회를 열었다. 최소 수백 개에서 최대 수천 개의 얼음으로 만든 ‘최소의 기념비’는 햇볕을 쪼이며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얼음 인간은 햇볕을 많이 받은 신체 부위부터 녹아내린다. 다리가 먼저 녹아내리는 얼음 조각도 있고, 머리나 팔부터 없어지는 것들도 있다. 높이 20센티미터 남짓한 수천 개의 남녀 조각상은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30분 이내에 각각 다른 모습으로 서서히 소멸해간다. 지나가는 행인이나 관람객들은 녹는 얼음에 왜 입을 맞췄을까?

최소의 기념비는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자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되는 인류의 재앙을 상징한다. 신체 부위가 녹아내리다가 30분 이내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얼음은 소멸하는 인간 군상의 슬픔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의 유한성을 이보다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쉽지 않으리라.

넬레 아제베두의 ‘얼음 인간’ 조각 전시회2
넬레 아제베두의 ‘얼음 인간’ 조각 전시회2

전시하고 나면 30분 이내에 녹기 때문에 그녀의 전시 작품은 항상 사진으로만 남게 된다. 작품이 사라져버리는 이 전시회는 그래서 늘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띤다. 얼음 조각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는 관람객들은 언제가 자신도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얼음 조각에 사람의 온기어린 손길이 닿을수록 소멸의 속도가 빨라질 뿐이다. 전시 작품의 이런 속성은 환경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현실적이고도 생생하게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넬레 아제베도의 얼음 인간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라고 다그치는 듯하다. 전시회에 붙어 있는 슬로건은 이렇다. “인생은 짧다. 녹기 전에 즐겨라(Life is short, enjoy it before it melt).” 인생을 흥청망청 즐기라는 뜻이 아니다. 즐길 테면 어디 한번 즐겨보라는 식으로 빈정대는 표현이다.

인생은 짧은데 계속해서 그렇게 마음대로 즐기기만 할 거냐는 역설적인 메시지다.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얼음 인간이 전하는 메시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30분 이내에 녹아내리는 얼음 인간처럼 우리가 소멸하는 시간도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저작권자 © 반론보도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