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문제 때문에 갈수록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방향을 잘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방향 상실의 시대’로 설정하고 환경 인문학 차원에서 접근한 전시회가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해 2022년 9월 9일부터 2023년 2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현대차의 아홉 번째 기획전으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지하 1층, 서울박스, 제5전시실, 미술관의 복도가 전체 전시 공간이었다.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전시회 포스터
△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전시회 포스터

전시장에 들어서면 <원탁>과 <검은 새>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는데 관람객들은 이 작품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원탁>은 머리 없는 18개의 볏짚 몸체가 검은 원탁의 무거운 상판 밑에서 계속 움직이고, 상판 위에서는 공 모양의 둥근 머리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도록 설계한 설치작품이다.

18개의 볏짚 몸체가 떠받치는 상판에서는 볏짚을 뭉쳐 만든 공이 볏짚 몸체의 잘린 부분에 닿을 듯 계속 굴러다닌다. 공은 볏짚 몸체에서 잘려나간 머리 모양 같다. 18개의 몸체는 잘린 머리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들지만 공은 다른 쪽으로 굴러가버린다. 몸체가 움직이면 원탁이 내리막을 만들기 때문에 머리를 붙일 수 없다. 볏짚 공은 경로를 이탈해 가끔씩 원탁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천정을 올려다보면 <검은 새> 세 마리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훤히 내려다보며 비상하고 있다. 천정에 매달린 <검은 새>는 경쟁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원탁>을 떠받치는 볏짚 몸체들과 달리, 경쟁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나 특권층을 의미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보면 등허리가 고정된 채 원탁을 떠받치고 있는 지푸라기 몸체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단하게 움직이라고 강요받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머리 하나를 차지하려고 몸부림치는 볏짚 몸체의 강요된 투쟁은 직간접적으로 무한 경쟁을 강요당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  '원탁' 설치작품 전경
△  '원탁' 설치작품 전경
△ '원탁'과 '검은 새' 설치작품 원경
△ '원탁'과 '검은 새' 설치작품 원경

앞서 소개한 <원탁>과 <검은 새>는 워낙 유명해서 작품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지만, 환경 인문학의 맥락에서는 <URC-1> 작품과 <URC-2>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복도에 설치된 이 두 작품은 자동차의 폐 조명 등을 재활용했다.

폐차 직전의 자동차에서 분해한 전조등과 후미등을 모아 자체 발광(發光)하는 항성인 별을 만들었다. 크기, 진화 정도, 표면 온도에 따라 각각 다른 색으로 빛나는 별처럼 이 작품도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었다.

전조등을 재활용해서 만든 별은 은은하게 빛났고, 후미등을 재활용해서 만든 별은 붉게 빛났다. 작품 제작에 쓰인 조명등은 폐차장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최우람 작가는 신차개발연구소에서 실험용 자동차가 폐차되는 장면을 보고 나서 폐 조명등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하늘의 별이 우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듯이, 작품으로 태어난 폐 조명 등은 우리를 환경 보호 문제로 연결해준다. 자동차에서 떨어져 나온 폐 조명 등은 그 쓰임새를 끝내지 않고 다시 우리 앞에 새로운 빛을 제시해주고 있다.

△  폐 전조등을 재활용해 만든 'UCR-1' 설치작품
△  폐 전조등을 재활용해 만든 'UCR-1' 설치작품
△  폐 후미등을 재활용해 만든 'UCR-1' 설치작품
△  폐 후미등을 재활용해 만든 'UCR-1' 설치작품

이밖에도 검은 철제 프레임의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함으로써 제5전시실을 가득채운 거대한 조각 작품인 <작은 방주>가 매시간 30분에 20분 동안 ‘방주의 춤’을 선보인 장면도 관람객의 주목을 끌었다.

전시회의 시작과 끝을 거대한 기계 꽃으로 장식했던 작품 <하나>와 작품 <빨강>에는 우리 시대를 염려하는 작가 정신이 깊이 깃들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코로나 19를 극복하려고 희생했던 의료진의 방호복 소재 인 타이벡(Tyvek)으로 제작했다. 생사를 넘나들며 위기를 극복해온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애도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 전시회에서 작가는 설치 작품과 조각 작품 12점을 비롯해 영상 및 드로잉 37점 등 모두 53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기술 발전과 진화 과정에 투영되는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최우람 작가는 기계생명체(anima-machine)의 서사와 움직임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기계 생명체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해온 작가는 인공 기계도 생명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며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는 세계관을 제시해왔다. 이 전시회는 작가의 30년 작품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더불어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인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동안 당연시하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도록 했다. 다른 기업에서도 예컨대 폐 전조등이나 폐 후미등 같은 자사 상품을 재활용해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게 하는 환경 인문학의 제전(祭典)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최우람 작가가 주목한 '방향 상실의 시대'란 기후변화와 경제 위기로 야기된 불안감과 양극화의 심화 현상을 의미한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方舟)’ 같은 위기 상황으로 인식했다. 우리에게 위기의식을 환기한 작가는 과도한 욕망을 버리라고 권고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우리 스스로 찾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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