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또 보복이 비단 언론 관련해서만 문제되는 것도 아니다. 보복성 인사발령이니, 보복성 범죄, 보복성 소비와 저축 등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고 언론의 보복성 기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Q) 기업 입장에서 언론 대응 방안으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이나 법원 소송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법적 대응 이후 추가 피해, 다시 말해 보복성 기사가 나오지는 않을지 우려가 되는 것이다.
섣부른 대응에 나섰다가 별다른 성과도 없이 언론사와의 관계만 악화시키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복성 기사에 대한 확실한 방지책은 없는지 궁금하다.

A) 보복성 기사의 문제는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개념은 선명한데, 그 실체는 다소 모호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복잡하기까지 하다.

그간 언론 스스로도 보복성 기사에 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해왔다. 유능한 자사 기사를 경쟁사에서 빼갔다는 이유로 경쟁사의 계열사 비리를 기사화했다는 의혹도 있었고, 건설사를 운영하는 자사 대표가 공사 수주에서 물을 먹었다는 이유로 해당 지자체장을 까는(?) 기사를 냈다는 논란도 있었다.

심지어 자사 대표가 해당 지역 유지들이 모이는 간담회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트집잡기식 기사를 연거푸 냈다는 의심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의혹만 무성할 뿐, 보복성 기사로 밝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일까?

일단 보복은 기사 내용의 문제가 아닌, 동기 내지 목적의 문제다. 보도의 동기나 목적은 객관적으로 확인 내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보복성 기사는 비판보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을텐데 감시견(watch dog)으로서의 언론이 비판보도를 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 관심법(觀心法)을 구사하지 않는 한, 기사 내용만 가지고 공익적 목적의 정당한 비판보도인지, 아니면 보복성 비판보도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공익성 없는 보복성 기사에 손해배상' 판례 있어

다행히 사안의 맥락을 살피면 의도가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보복성 기사를 내는 데에는 다 그만한 전후사정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보복성 기사임이 인정된 사례들이 있다.

A언론사 편집국장 B는 교육 관련 기업 C의 홍보실장을 만나 광고비를 요구했다. C 측은 B의 요구를 거절함과 동시에 공갈미수로 고소했다. 고소장이 접수된 지 10여일 후, C의 전(前) 대표 관련 3년 전 성추행 사건 기사가 A언론사를 통해 보도된다. 이 사건에 관해 법원은 과거의 성추행 사건이 “새삼스럽게 재조명되어야 할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아 A언론사에 기사 부분 삭제 및 손해배상 3천만원 지급을 명했다(서울남부지법 2017가합110978).

인터넷신문사 D에서 한의사 E가 시술하는 한방성형에 문제가 많다는 취지로 기사화했다. 기사에 앙심을 품은 E와 그 남편이 D의 사무실로 찾아와 D 소속 기자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는 등 업무를 방해했다. 다음날, D 신문사는 E와 그 남편이 D의 사무실에서 40분간 난동을 피우고 모욕적 언사를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기사에 관해 법원은 “개인적 분쟁에 관한 내용”으로 공적 관심사가 아니라고 보아 기사삭제 및 손해배상 2백만원 지급을 명했다(서울중앙지법 2016가합580918).

언론사의 책임이 인정된 두 사안 모두 기사 내용상 진위 여부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로 진실에 가까운 기사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도의 공익성인데 두 사안 모두 보도의 공익성이 부정되었다. 판결문에서 직접 ‘보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후 맥락상 일종의 보복성 기사로 판단,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내용과 무관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내용과 무관

법적 책임 유무 가리는 것은 보도의 동기가 아닌 보도 내용

한편, 어렵게 보복성 기사임이 인정되었다손 쳐도 이것만 가지고 언론사에 곧장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 유무를 최종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보도의 동기나 목적보다는 보도 내용이다. 기사에서 다뤄진 사안이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고 정당한 공적 관심에 해당하면 설령 보도의 동기가 조금 불순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100% 순수하게 공익만을 추구하는 기자나 언론사는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기자의 공명심이라든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은 마음과 보복의 의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기사의 객관적 내용이 주관적인 동기·목적보다 더 중요하다. 법원에서 보복성 기사로 인정한 두 사안 모두 전후 맥락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보도 내용 자체가 시의성을 결여했거나 지나치게 사사로웠다. 이와 달리, 기사 내용이 충분히 공익적이었다면 보복의 의도가 좀 있었어도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요컨대, 언론 대응에 있어서 ‘보복성 기사’ 프레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일차적으로는 기사 내용상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보복의 의도가 다소 보인다 해도 공익성 있는 기사 내용이라면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지나치게 사사롭다면 전후 맥락을 살펴 어느 정도 보복성 기사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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