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 부문에서 이른바 ‘갑질’ 행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일부의 행태는 취업난과 고용 불안, 치열한 경쟁과 맞물려 가뜩이나 살벌한 직장 문화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기업에서도 일부 출입 기자들이 홍보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폭언이나 협박성 발언이 잦아져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서 홍보 담당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다든지, 제시된 광고 규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기사로 협박하는 사례가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불거지고 있다.

어떤 사회 문제점이든 원인을 파악해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 최근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행태가 과연 ‘행태’라는 단어가 시사하듯이, 일부 언론 종사자의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지, 아니면 어떤 구조적 관계에서 비롯하는 병리적 징후와 연계되어 있는 것인지,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짚어보기로 한다.

언론과 홍보, 공생인가 갑을관계인가?

출입처 기자와 홍보 담당자는 업무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동안 이 관계의 성격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우호적인 기업 이미지 조성에 목적을 두는 홍보는 늘 의심하고 비판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 기자의 직업 목표와 상충한다는 점에서, ‘적대적’ 관계로 보는 견해가 오랫동안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전문화하면서 출입처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졌고, 이에 따라 이 관계를 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20세기 후반 여러 선진국에서는 홍보 종사자의 급증과 전문화가 시대적인 추세가 됐다. 홍보는 체계적인 지식에 따라 운영되는 전문 직업 영역으로 대접받게 됐다.

언론에서도 홍보를 전략적 동반자이자 공생관계로 보는 시각이 점차 확산했다. 미국에서는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홍보자료에 의존하는 관행을 ‘정보 지원’(information subsidy)라는 완곡어법으로 포장한 학술용어도 등장했다(1980년 언론학자 오스카 갠디가 쓴 “Information in health: Subsidized news”라는 논문은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홍보의 의미는 해외의 교과서적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유교 사회의 권력 기구에서 파생된 ‘언론’이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홍보 담당자들은 언론을 여전히 권력 기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기업의 홍보 업무는 자사와 관련된 기자들의 취재 지원 기능을 넘어 부정적 보도를 최소화하려는 ‘대언론 관리’가 주를 이룬다. 언론사에 지출되는 광고비 역시 비용 대비 효과 측정에 따라 집행되는 마케팅 전략이라기 보다는 언론을 통해 발생할지 모르는 위기 관리 수단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기업 홍보와 광고 차원에서 여전히 중시되는 이유는 기업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잠재적 위력을 갖기 때문이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이 점을 예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89년 라면 업계의 ‘공업용 우지’ 파동일 것이다. 당시 검찰이 제보에 따라 라면 업체의 동물성 기름 사용을 문제삼아 기업들을 무더기로 기소했는데, 애초부터 법적 근거나 과학적 기준에서 보면 무리한 조치였다. 결국 7년을 넘는 소송 끝에 무죄 판결이 났지만 해당 기업들이 입은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파동 와중에 언론이 ‘공업용 우지’라는 혐오스런 신조어를 붙여 광범위한 불매운동을 자극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이 파동은 언론의 악의적 보도가 멀쩡한 기업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대언론 관리와 더불어 광고 지출을 언론의 잠재적 공격이란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지출하는 일종의 ‘보험료’로 간주하는 듯하다. 2011년 3개 일간지에서 5대 기업을 대상으로 12년치 보도 내용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 성향의 종합지와 경제지에서는 호의적인 보도량과 광고량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인호 등, 2011, “신문의 대기업 호의보도와 광고량의 상관관계”, <한국언론학보> 55권 3호). 기업의 마케팅 업무 중 핵심인 광고가 대언론 관리 차원에서 집행된다는 사실이 실증적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사 발행부수는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과학적 기준이 아니라, 대언론 관리에서 각 언론사의 ‘상대적 비중’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언론과 홍보의 관계는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권력 행사를 매개로 한 전근대적 관행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해, 갑질 발생의 온상이 되고 있다. 기자 역시 출입처와 관계에서 이러한 암묵적 기대치를 갖고 처신하기 때문에, 이 상호기대치는 언론과 출입처 간의 구조적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축을 이룬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 출처 :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기자의 시각

언론-홍보 관계를 보는 기자의 시각은 소속사의 유형이나 위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양자 관계에서 상호 기대치의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기자의 판단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업 출입 언론사 중에서 특히 신문은 숫자나 종류 자체가 워낙 많아, 홍보 담당자가 이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기 어렵다.

대체로 홍보실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신문을 주요 중앙일간지, 전국 경제지, 유력 지방 종합지 등 발행부수 규모나 유형별로 등급화해서 광고 지출이나 홍보 업무에서 각사 위상에 상응하는 대우를 제공한다. 물론 이처럼 차등화된 대우는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홍보 담당자에게 사실상 지침 구실을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관행적 차등화 체제는 최근 광고 환경의 악화로 근간이 흔들리면서 갈등 유발요인이 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환경에서는 전통 매체의 비중이나 효과가 크게 줄어들어, 이들에게 돌아갈 광고 지분도 감소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기업 출입처에서 각 언론사가 지분을 확보하려는 투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자가 인식하는 소속사의 위상은 홍보 담당자의 판단과 때로는 격차가 날 수 있고, 이때에는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크다. 기자는 소속사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상한다. 자신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미흡한 대우가 발생했다고 인식하면, 즉시 이를 회사 위상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폭력적이고 거친 태도를 홍보 담당자에게 표출하기도 한다.

원론적으로만 보면, 언론사와 출입처 기업 간의 관계는 갑과 을의 위치를 모두 갖는 이중적 관계다. 언론사는 기업 광고 유치를 위해 눈치를 보는 을의 위치이면서도, 홍보 담당자에게는 절대갑으로 행사하는 묘한 관계가 성립한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관계에서 기자는 소속사 위상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사의 위력을 의도적으로 과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발생하는 기자의 갑질은 한국 언론의 전근대적 성격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구조적 성격을 띤다.

나아가 홍보 담당자에 대한 갑질 등 기자의 부적절한 처신은 소속사와 무관하게 기자 개인의 자질이나 성격 차원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일부 기자가 취재 직무에 따른 영향력을 개인적 자질이나 특권으로 착각하기에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는 기업이나 소속사에 모두 해를 끼치는 심각한 직업 윤리적 일탈 행위다.

최근 부쩍 심해진 기자 갑질은 이 두 차원과 모두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떤 사회 부문에서든 담당자의 관계가 권력관계에 근거한다고 해서 ‘갑질’ 행태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출입처 기자의 폭언, 협박 폭행 사례는 일부 기자들이 아직도 전근대적 언론관과 구습에 머물러 있는 직업적 자질 미달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는 역설적으로 갈수록 전통 언론의 위상 강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입지를 좁히게 되는 자멸적 행위이기도 하다. 소속 언론사나 언론계 자체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자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하는 이유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 출처 : 이미지투데이,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홍보 종사자의 시각

언론과 홍보 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 문제를 바라보는 홍보 종사자의 시각은 기자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한국 언론의 전근대적 관행하에서 홍보와 광고 업무 역시 해외의 교과서적 규정과 달리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정착되었다.

언뜻 기자와 홍보 담당자는 입장이 다를 뿐 비슷한 일에 종사한다. 홍보 담당자는 기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뉴스가치가 높고 기사화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해 제공하고, 기자가 일상적 취재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한다. 언론사의 뉴스가치와 작업 리듬에 맞게 보도자료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홍보 담당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 영역다.

이 업무는 적어도 기자만큼 전문성을 띠는 일이지만, 기업 내에서도 언론에서도 당연시될 뿐 전문성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그 대신 주요 홍보 업무는 대언론 관리의 일환으로 기자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관리하고 돌발적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일에 초점을 둔다.

홍보 담당자의 직무나 근무 주기 등 모든 업무는 철저하게 기자 중심으로 맞추어져 있다. 이 업무는 외관상으로 보면 정보 주고받기라는 공적 관계 형태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사적으로 원만하고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통해 유사시에 기자의 행동을 우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홍보 담당자의 전문 영역으로 통한다. 특히 기자들의 변덕스럽고 다양한 요구와 비위 맞추기를 ‘티나지 않게’ 잘 수행하는 능력은 홍보 업무의 핵심에 속한다.

대개 어떤 업종이든 종사자와 고객 간의 ‘관계’, 특히 사적관계는 직업적인 공적 거래를 원활히 해주는 부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서는 이 관계를 관리하는 기술 자체가 직업 활동에서 핵심이 되기도 하는데, 서비스 업종이나 홍보 업무가 대표적이다. 앨리 혹실드라는 학자는 이러한 업종의 직업 특성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라는 개념으로 파악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 기업의 홍보 업무는 ‘관계노동’이라 할 정도로 사적 관계 관리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의 전형적 사례다. 언론학자 김수미는 이 점에 주목해 국내 홍보 종사자의 직업을 “을의 문화”로 규정했다(김수미, 2020, “‘을의 문화’로서의 PR직업: 인하우스 대언론 홍보 종사자의 직업 정체성에 관한 질적 연구,” 부산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한국 사회에서 홍보 직업 자체가 갖는 ‘관계노동’의 성격을 감안하면, 홍보 담당자에게는 기자를 대하는 업무 자체가 큰 정서적 부담을 안겨주는 감정노동이다. 특히 일부 기자의 무신경하고 배려 없는 행태는 홍보 종사자에게 엄청난 직업적 스트레스를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홍보 담당자 중에서 상당수가 한때 기자 지망생이었다는 배경을 감안하면, 기자의 갑질은 홍보 종사자의 직업적 만족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홍보 분야에서 최근의 기자 갑질 사태가 갖는 심각성은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처럼 구조적,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기자 갑질을 개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해결방안은 언론사와 기업 양쪽에서 모두 구상해볼 수 있다. 관계 기반의 업무에서 문제점은 이론적으로야 어느 쪽에서든 발생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개 기자의 무리한 요구나 과도한 기대치에서 비롯한다.

이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해당 기업 사주나 경영진의 태도다. 귀책 사유를 막론하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홍보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주가 있는가 하면, 기자 대응에서 일정한 원칙을 정해 놓아 홍보 담당자의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는 사주도 있다. 어느 쪽의 홍보 담당자가 높은 직업 만족도를 보일지는 굳이 연구 결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두 짐작할 것이다.

언론사 측에서는 이 같은 갑질 행태를 기자 개인의 일탈 행위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언론과 기업 홍보 부서 간의 왜곡된 관계에서 비롯하는 병폐로서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전통적 매체의 입지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언론은 기업에게 잠재적 파괴력 과시를 통한 위상 관리 차원이 아니라 과학적인 광고와 홍보 효과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더욱 자구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런데 최근의 기자 갑질 사태는 단순히 홍보 담당자 측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언론사의 위상과 존재이유에 의문을 던지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언론사 측에서 가장 먼저 취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회사나 업계 차원의 윤리 교육과 자율규제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언론계는 자율규제가 잘 통하지 않기로 악명이 높지만, 적어도 자구노력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기업 측에서 보면, 피해자 소속사가 기자들에 대해 껄끄러운 대응 조치를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만 기자 갑질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해결의 첫걸음이다. 최근의 학폭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업계뿐 아니라 학계, 사회단체 등을 통해 다각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기자 갑질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의외로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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