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로 손자병법을 꼽았다. 손 회장은 27살에 손자병법에 자신의 경영전략을 접목한 5자씩 5구절로 구성된 25자의 ‘제곱법칙’이란 경영철학을 만들었다.

도천지장법  정정략칠투  일류공수군  지신인용엄  풍림화산해
道天地將法  頂情略七鬪  一流攻守群  智信仁勇嚴  風林火山海

손 회장은 젊은 시절 이를 바탕으로 40여개의 사업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2,600년 전의 병서(兵書)가 오늘날 일본 경제의 거인 손정의의 지침서가 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 회장이 제시한 25자 중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은 손자병법에 나온 ‘지휘관에게 필요한 다섯가지 자질’을 의미한다. 그는 현대 경영에 맞춰 의미를 재해석했지만 이번 고사속 리더십은 손무가 제시했던 지신인용엄의 본래 의미를 살펴본다. [반론보도닷컴=이명진]



손자병법은 기원전 5세기 경(추정), 오나라의 명장이었던 손무가 저술한 병서다. 이후 위무제 조조 등 후대인들의 해석과 감수를 거쳐 지금의 손자병법이 되었다.

손자병법은 서양에서는 1,900년대에 정립된 개념인 '대전략’을 기원 전에 제시했다. 대전략이란, 전략의 범위를 전쟁에 한정짓지 않고, 외교·경제·지리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대신 우주 진출을 두고 패권을 다툰 미국과 러시아의 20세기 우주경쟁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손자병법에는 전술 외에도 외교·정치·지리·대중 심리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손무는“전쟁의 승패는 장수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며 훌륭한 지휘관은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이 다섯가지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자병법(左), 손무 조각상(右) / 위키피디아 사진
손자병법(左), 손무 조각상(右) / 위키피디아 사진


智, 지혜로운 판단과 전문 지식

손무는 지휘관의 첫 번째 자질로 지(智), 즉 지혜로운 판단력을 꼽았다. 전문지식과 사고력, 슬기로운 대처 등을 의미한다.

진나라의 명장 왕전은 전쟁에 나가면 항상 이겼을 뿐 아니라 병사와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반면 그의 상관인 진왕 영정(진시황)은 의심이 많고 잔혹한 성격이었다.

초나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진왕은 왕전에게 군사 60만명을 내주었지만 반역을 우려했다. 이에 왕전은 전투를 앞두고도 토지와 재물을 보장해 달라고 끈임없이 요구했다. 왕전은 반역은커녕 하찮은 재물이나 탐하는 소인배로 이미지 메이킹을 함으로써 진왕의 의심을 피하고 전쟁에 승리했다.

이순신 장군과 악비, 염파 등 수많은 명장들이 왕의 견제와 정적들의 모함으로 숙청당하고 나라가 위태로워졌음을 볼 때, 왕전은 스스로 불명예를 껴안음으로써 오랜 전란을 끝내는 지혜를 보였다.

信, 투명한 신상필벌

신(信)은 지휘관의 신상필벌이 명확하고, 하는 바가 공명정대함을 의미한다. 신상필벌은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 지은 자는 반드시 처벌한다”는 법가(法家)의 핵심 사상이다.

이순신 장군은 7년 간의 전투기록(전서)에 간부부터 종살이 머슴까지 전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공로를 적어 왕에게 올려 신상(信賞)을 명확히 했다. 반면 탈영병은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사형에 처했으며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백성을 괴롭힌 군인은 가혹한 곤장으로 필벌(必罰)을 지켰다.

仁, 어진 성품

인(仁)은 부하를 아끼는 마음이다. 초나라 장왕, 진나라 오기, 명나라 이여송 등 부하를 남달리 아꼈던 리더들의 일화는 많다. 그 중에서도 일본 전국시대의 패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계자 히데타다의 일화를 눈여겨 볼만 하다.

히데타다는 부친과 달리 성품이 유약하고 전쟁에도 서툴렀다. 거친 사무라이들에게 히데다타는 이상적인 주군이 아니었고 중신들은 후계 지명에 반대했다. 이전까지 열도를 지배한 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카리스마적인 쇼군이었다.

그러나 히데타다는 회의 중 긴장한 부하가 실수를 하면 오히려 갑자기 조는 척을 하며 눈감아 주었다. 또 “부하를 부리려 해선 안되며 부려져야 한다”는 당시 상식에 어긋나는 언행을 자주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오랜 전쟁과 지배자의 가혹한 치세에 지친 신하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는 전란을 끝냈수 있었다.

勇, 용기와 과감한 행동력

용(勇)은 기회가 오면 과감히 행하고 적과 두려움없이 맞서 싸우는 용기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할 때, 적군은 삼림지대를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로마군을 지치게 했다. 카이사르는 사령관임에도 선봉에서 싸우고 병사들을 직접 간호해 군인과 로마 시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부터 담력이 남달랐다. 유학 길에 납치를 당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몸값은 50탈렌트는 되어야 한다며 오히려 해적들이 제시한 몸값보다 30탈렌트를 올렸다. (카이사르는 몸값을 올리면 해적들이 몸값을 받을때까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리라는 계산도 했다고 하니 단지 용기만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38일간 대접을 받으며 “네놈들을 나중에 죽이겠다”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하인이 돈을 가져와 풀려난 그는 근처 밀레투스에 가서 배와 선원을 마련하고는 납치했던 해적들을 역으로 소탕했다.

嚴, 군율의 엄정함

마지막으로 엄(嚴)은 군율이 엄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촉나라 제갈량이 명령을 어긴 마속을 처단하려 하자, 장완은 아까운 인재라며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손무가 항상 싸움에 이긴 것은 군율을 엄정히했기 때문이다”고 답하며 마속을 참수했다.

실제 역사에도 손무가 군율을 세운 일화가 나온다. 오왕 합려는 새로 채용한 손무를 시험하고자 후궁 180명을 군율잡힌 부대로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손무는 180명 중 합려가 총애하는 후궁 2명을 사령관으로 삼고 훈련을 실시한다.

후궁들은 왕의 유희거리로 여겨 웃고 떠들며 훈련에 임하지 않았다. 이에 손무는 “병사들의 나태함은 사령관의 책임”이라며 후궁 2명을 본보기로 처형했다. 후궁들은 군기가 잡혔고 3개월이 지나 군인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오왕은 아끼던 후궁을 잃어 분노하면서도 손무의 지휘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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