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현의 Crisis Consultant

죄가 아닌데 죄라고 불리는 죄가 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법률상 죄가 아니지만 죄라고 부르고 있다. 바로 괘씸죄다. 괘씸죄가 별도의 법률 개념은 아니다. 근대 형법상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지만 여론의 법정에선 엄연히 존재하고 적용된다.

죄형법정주의가 확립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군주와 왕족의 존엄을 해치는 불경한 자들을 불경죄로 처벌을 했었다. 주권자인 군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체제에서 백성을 다스렸던 수단 중 하나였다.

이 불경죄가 주권자가 국민이 된 민주국가에서 이른바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으로 재단되는 괘씸죄로 변모한 셈이다. 법적 처벌은 없지만 대다수 국민감정과 국민 정서를 거스르면 받는 죄다.

과거 전두환 정권 때는 괘씸죄로 대기업이 공중분해되기도 했다. 고무신 생산으로 시작해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한 국제그룹 이야기다. 당시 정치자금을 적게 낸 것이 괘씸죄가 되어 그룹이 해체되었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기업 비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때 괘씸죄는 불경죄에 가까웠다.

이후 자신이 위험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처벌하자는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으로 괘씸죄를 실제 처벌할 수 있는 법률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방송인 이창명 씨는 과거 음주운전 논란 이후 대법원에서 음주운전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최근 방송 복귀를 하고 추가 프로그램 MC 계획도 공개되었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중의 시선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냉랭하다.

당시 논란이 일어났던 정황과 이창명 씨의 대응 과정에 대해 대중은 실제 법정인 대법원 판단과 달리 여론의 법정에서 이미 괘씸죄 선고를 내린 것이다.

평소 사회 정서 살피고, 기대치 관리해야

기업이 경영 활동과 마케팅 활동을 할 때 여론의 법정에서 괘씸죄 적용을 받지 않으려면 평소 혹은 위기 시 다음 두 가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기대치 관리다. 유승준 병역 기피 이슈는 기대치 관리 실패로 괘씸죄 논란을 일으킨 가장 대표적 사례다. 그는 1997년 데뷔 이후 바른 청년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다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 병역 의무를 피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결과 20여 년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연 매출 1,700억 원을 돌파하며 인플루언서 대명사로 자리 잡았던 임블리의 하락 과정 속에도 대중에 대한 기대치 관리 실패가 괘씸죄 적용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평소 친한 언니처럼 느껴졌던 임블리는 제품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비정상적인 고객 응대와 홍보에 집중했다고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에 누적된 반감이 폭발했다. 이후 계속된 사과에도 오히려 안티가 되어버린 많은 고객과 대중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왼쪽부터 사진 설명)Mnet ‘스트릿우먼파이터’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댄서 노제의 SNS 광고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노제 소속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표명했으나, 하루만에 입장을 바꾸고 사과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두번째 사진)넷플릭스 ‘솔로지옥’에 출연해 유명해진 유튜버 프리지아는 가품 착용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왼쪽부터 사진 설명)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댄서 노제의 SNS 광고 갑질 의혹이 제기됐다. 노제 소속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표명했으나, 하루만에 입장을 바꾸고 사과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두번째 사진)넷플릭스 ‘솔로지옥’에 출연해 유명해진 유튜버 프리지아는 가품 착용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 가품 논란으로 비난받았던 유명 인플루언서 프리지아와 갑질 논란으로 아직도 정상적 활동이 어려운 유명 댄서 노제도 비슷한 기대치 관리 실패로 괘씸죄 판정을 받았다.

친근한 기업이나 유명 인플루언서에게 호감을 느꼈다가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볼 때 인간과 어설프게 닮은 모습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현상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기업이나 인플루언서의 팬덤은 이내 충성심 강한 고객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친근한 오빠, 언니, 형, 동생이나 친구 같은 인간으로 의인화된 대상으로부터 평소 기대하는 행동이 일관되게 나오지 않을 경우 즉시 신뢰는 무너진다.

유승준과 임블리, 프리지아와 노제 모두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팬덤은 이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곤고했던 팬덤에 충성심과 기대감이 그 반대인 배신감으로 급변하는 순간은 믿음과 신뢰가 무너질 때다.

기업과 개인에 대한 우호적 팬덤은 기대치 관리에 따라 언제든지 부정적 안티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두 번째는 보편적 사회 정서에 반하는 언행과 태도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여전히 일정 부분의 반일 감정이 유지되고 있다. 과거 일본 불매운동이 정점일 때를 생각해 보면 특정 일본 패션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이 가장 강했다.

일본 패션 브랜드의 본사 임원이 “한국에 일어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지면서 대중으로부터 괘씸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명 패션 매거진 보그 코리아의 청와대 화보 논란이 여론의 법정에서 괘씸죄 선고를 받았다. 보그 코리아는 한국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청와대를 배경으로 이번 작업을 진행했으며 한복의 미와 문화유산을 알리는데 집중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즉시 유명 한복 디자이너로부터 부정되었고 오히려 왜색이 강해 과거 일본의 국권 침탈 역사에서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든 이유와 비견되기도 했다.

이후 촬영 허가를 한 문화재 청장이 고개를 숙였고 보그 코리아도 화보를 진행한 사진을 홈페이지와 SNS에서 삭제했다. 최근에는 이 여파로 국회에서 청와대 보존법까지 발의되었다.

이런 언행과 태도의 원인은 먼저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인지 부족으로 발생한다. 최악에 경우 정확한 상황을 애써 부인하면서 비합리적 신념과 세계관에 집착한 나머지 핵심 이해관계자가 표출하는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작용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대중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최악에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선 기업 경영진들과 마케팅 관련 구성원들은 공감 능력 향상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에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권장되어야 한다.

여론 괘씸죄, 빠르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사실 관계 정립 통한 설득과 교정 필요

종종 여론의 법정에서 대중들의 괘씸죄 선고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본다. 때론 강력한 법적 대응 포지션이 사안과 상황에 따라 적절할 수 있다. 단, 이런 경우라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 방식은 권장하지 않는다.

정말 법적 대응이 필요했다면 다연장로켓이 아닌 유도탄이 더 낫다. 결국 대중들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대다수를 적으로 돌리고 우리를 이해하는 우군 확보에 실패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괘씸죄는 항상 대중과 다수의 언론이 생산하고 온라인에서 확산 재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다수 언론과 대중은 표면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지만 이른바 무릎 꿇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어 곤혹스럽다.

괘씸죄의 대상이 되는 기업과 개인은 대부분 한 분야에 일가를 이뤘거나 승승장구하고 있는 주체인 경우가 많다. 법적 위기는 아니지만 실수가 노출되면 명성과 평판 측면에서 떨어질 높이가 높고 잃을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괘씸죄 판결을 받으면 과거에는 무조건 피하자는 전략이 대세였다. 사과 표현과 함께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때도 언론과 대중을 향한 적극적인 해명이 오히려 그들에 대한 도전이 되고 또 다른 논란으로만 규정됐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이런 과정을 통해 언론과 대중을 이기는 사람과 기업은 없다고 학습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이 언론과 대중에게 맞서는 일종의 저항도 새로운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빠르고 정확한 상황 판단을 통한 사실 관계 정립과 이를 통한 설득과 교정이다. 이때 의견과 주장, 추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와 공감 가능한 맥락이 매우 중요하다.

여론의 정서와 흐름 그리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무관심만을 보인다면 여론의 법정에서 대중들이 내린 괘씸죄 선고는 상소할 수 있는 확정판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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