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를 맞아 우리 국민의 미디어이용 행태가 동영상 중심으로 변하면서 선호하는 플랫폼과 매체 신뢰도가 사뭇 달라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평생 기자 생활을 하며 매체시장의 변화, 특히 신문의 위상 하락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봐온 한 언론인의 글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심화된 매체 경쟁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신문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고 언론이 지켜야할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담은 이 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신문사 대표가 광고주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서한(書翰) 형식의 이 글은 “기자 생활한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난 한해만큼 고민이 깊었던 적은 없었다”며 서언을 밝혔다.

그는 “디지털로 무장한 신(新)미디어 앞에서 신문은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했고, 묘책은 없는 가운데 홈런보다는 번트를 대는데만 급급했다”며 종이 매체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했다.

또한 “기업환경이 열악해지고 비즈니스가 위축되면서 광고물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신뢰에 바탕을 둔 매체 파워가 있었다면 그에 상응한 비즈니스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디지털 시대에 뒤처진 방식이란 소리도 있지만, 커피를 들고 골치 아픈 회의를 수차례씩 하는 일상을 반복해 왔다”며 “신문을 사랑하고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종이신문을 위한 시장은 필연코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한 신문을 만든다는 건 “오직 사실만을 말하며 편견을 줄이고 개인은 물론 국가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신문의 본분’을 지키겠다는 독자와 사회에 드리는 약속”이라며 “다른 미디어들이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올곧게 지식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신문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자 나라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키우는 일”이라며 “가장 아픈 대목은 소중히 지켜왔던 가치들이 오염됐다. 자유는 방종으로, 시장은 무질서로 변한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말미에 “이제부터라도 푸념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맺었다.

다음은 그가 애독자에게 보낸 서한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자주 찾아 뵙고 좋은 말씀 귀 기울여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많이 피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자생활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난 한 해만큼 생각이 많고 고민이 깊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뭐라도 묘책이 나올 법도 한데 그마저 여의치 않으니 머리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가슴은 갈수록 답답해졌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만 한때 영화를 누렸던 종이매체의 위상이 추락하는 걸 하루가 무섭게 실감했습니다. 우리 신문의 브랜드를 지키려 바둥댔지만 디지털이란 신기술로 무장한 신예 미디어 앞에 무기력했습니다. 그들의 공세에 우리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모 공과대학의 자기 반성문처럼 홈런보다 번트를 대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동안 편집국, 논설실만 관장해오다가 이제 신문판매와 광고도 살피는 자리에 온 저에겐 매달 받아보는 숫자가 스트레스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인정할 건 해야지요. 우리 신문의 브랜드가 그만큼 약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기업환경이 열악해지고, 비즈니스가 위축되면서 광고물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문이 미디어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체파워가 있다면 그에 상응한 비즈니스 성과를 거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저희 경영성과가 미흡한 것은 바로 이 미디어 간의 배틀그라운드에서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신문에 끊임없는 애정을 보내주신 광고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문 지면에 광고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효과를 따져 봐야 하고 눈치도 살펴야 한다는 점 십분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신문을 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우리 신문은 고도로 훈련된 220여명의 기자들이 작성하는 기사를 데스크와 편집국장의 검토를 거쳐 하나의 묶음으로 나오는 지식상품입니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앞에 놓고 하루에도 몇 차례 씩이나 골치아픈 회의를 지속하며 피로와 압박, 그리고 숱한 고민에 시달리며 신문을 만듭니다.

디지털 시대에 고리타분하고 뒤처진 방식일지는 몰라도 우리는 아직도 이런 아날로그적 습관과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이런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30년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누구 못지 않게 신문을 사랑했고 신문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런 종이신문을 위한 시장은 필연코 존재할 것이란 믿음이 저에겐 있습니다.

신문을 만든다는 건 독자, 더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사실만을 말하며 그 과정에서 편견을 줄이고 공동체의 총합을 키우며 개인은 물론 국가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입니다.

신문을 세밀히 읽는 여러분 같은 광고주 분들은 잘 아실테지만 우리 신문의 새로운 슬로건은 <Make knowledge>입니다. 다른 모든 미디어들이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더라도 우리는 올곧게 지식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바라는 국민소득 5만 달러의 달성을 하루 속히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감하고 경자년 새해를 맞아 그동안 우리 신문을 사랑해주신 광고주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외람된 말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신문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좁게 말하면 우리 신문을 지키는 일은 나라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키우는 일입니다.

요즘들어 제가 가슴아파하는 대목은 그동안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고 지켜왔던 가치들이 참으로 많이 오염됐다는 점입니다. 자유는 방종으로, 시장은 무질서로 그리고 자본주의는 탐욕으로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문사 동료 선후배와 대화를 하거나 외부 인사들을 만나 담소를 할 때 자주하는 저의 푸념입니다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저를 비롯한 우리 신문 식구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어찌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한숨만 쉴 수는 없습니다. 그 무거운 책임감과 부채 의식을 어깨에 걸머지고 이제부터라도 푸념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 편지가 도달할 때쯤이면 유행하던 독감이 좀 기운이 빠졌을 듯 합니다만, 늘 건강 유의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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