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가족과 임직원들의 배웅 속에서 영면했다. 생전 소탈한 성정으로 그룹 안팎의 존경을 받았던 구 명예회장은 마지막 길도 그가 걸어온 삶처럼 간소했다.

발인식은 대형 가림막으로 내부를 볼 수 없게 한 빈소 내에서 직계 가족과 친인척만 모인 가운데 시작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없이 약 30분 간 진행됐다.

발인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추도사, 헌화 순으로 이어졌다. 추도사는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문호 LG공익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이문호 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해 늘 현장을 찾으며 소탈한 모습을 보여온 고인을 기억했다. 이 이사장은 "회장님은 곧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를 쓰신 분이요, LG의 역사였다"며 "LG의 20만 임직원이 가슴에 새기고 있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이 바로 회장님의 경영사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LG 회장으로 계실 때에는 공장과 연구 현장에 가시기를 즐기시고 현장의 사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말씀하시며 너털웃음을 나누시던 큰형님 같은 경영인이셨다"며 "회장님은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큰 별이셨다"고 했다.

지난 15일 조문을 왔던 유철호 전 LG화학 고문도 간소한 장례식 분위기에 대해 "고인의 생전 성격 그대로"라고 했다. 고인은 1970년부터 25년 간 그룹의 2대 회장을 지내며 회사의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했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탈하고 겸손의 경영 방식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가 2대 회장에 오른 이후 LG는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을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며 원천 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이를 통해 현재의 글로벌 기업 LG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본래 교사였던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1947년1월5일) 초창기인 1950년부터 부친을 도와 45년간 LG그룹의 성장과 도약을 이끌어 1.5세대 경영인으로 불린다. 락희화학공업 이사로 입사한 구 명예회장은 초창기 판자를 빗대어 벽을 만든 공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숙직하면서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고, 이 같은 경험은 훗날 그가 LG그룹의 화학과 전자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밑거름이 된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재임한 기간 LG그룹은 전자와 화학을 주력으로 삼아 성장을 거듭, 취임 당시 260억원이었던 매출은 30조원대로 약 1150배 증가했고, 임직원 수는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평소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구 명예회장은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부문에서 부품과 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  원천 기술경쟁력 확보에 나서며 오늘날 재계 4위인 LG그룹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이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1995년 70세의 나이에 은퇴하면서 '무고'(無故) 의 승계를 이루는 등 한국 재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당시 퇴임사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 무상감도 들지만,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는 말은 남기고 임직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은퇴했다.

임직원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구 명예회장은 1990년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정한 이후 꼬박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명과 오찬 미팅을 가졌고, 어느 해에는 1년 동안 현장의 임직원들과 간담회 형태의 대화 자리를 140여차례나 갖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늘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쳐댈 때에도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며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구 명예회장의 기술에 대한 믿음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작물을 가꾸는 방식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이후 교직생활을 할 때도 구 명예회장은 제자들에게 늘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에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구 명예회장의 이 같은 연구개발에 대한 신념 뒤에는 우리 기술로 우리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산업과 기업의 수준을 한층 선진화해야겠다는 비장한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구 명예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바와 같이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는 염원을 꿈 꾸고 또 실현하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 (L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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