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 주도 성장과 소득 주도 성장이 조화를 이루려면 노동 혁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의 기술과 역량을 개발해야 현 시대에 걸맞는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낮은 지식 집약에다 혁신 역량이 부족한 전통 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경제 성장을 위해 해소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칼럼 전문이다.


혁신 주도 성장? 노동부터 혁신해야

소득 주도 성장 외에 혁신 주도 성장도 중요하다는 최근 정부 인식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가 안보 위기 등으로 위축되면서 설령 방향이 맞는다 하더라도 너무 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만으로 성장이 어렵고 혁신 주도 성장 축을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준비, 벤처기업 육성 등을 통해 경제에 새로운 피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는 이어서 정부에 노동 정책만 있고 산업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노동을 혁신해야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주도 성장이 결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기업, 새로운 산업만 주목하는 혁신 주도 성장이 아니라 기존 일자리, 기존 중소기업, 기존 주력 산업 혁신을 통해 경제가 살고 소득도 올라갈 길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네덜란드의 에라스뮈스 대학과 로테르담 대학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 혁신에서 기술 혁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사회 혁신 내지 비(非)기술적 제도 혁신이 이바지한다. 북유럽과 독일, 네덜란드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혁신과 생산성 증가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비용 절감을 통해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잠재적 인력 활용과 유연한 작업 조직이 요구된다.

여기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우선 인구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가까운 장래에 복지 및 사회 보장 수준을 유지하려면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식 기반 경제 및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경쟁력의 한 부분으로 노동자의 기술과 역량을 개발하고 활용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국가에서 중소기업은 낮은 지식 집약에다 혁신 역량도 부족한 전통 산업, 낮은 기술 집약 산업, 아니면 이미 성숙한 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비혁신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헝가리, 칠레, 스페인과 비슷한 상황이다.

중소기업 취업자가 80%를 넘는데 중소기업의 80%가 혁신적이지 않다는 문제는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문제를 돌파하려면 일터를 포용적 일터가 되도록 혁신하는 게 필요하다. 포용적 일터의 혁신이란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협력업체, 고객, 이해 당사자들과 관계를 혁신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포용적 혁신은 기술 혁신을 초월해 사회 및 조직의 혁신 등 비기술적 혁신을 포함해야 하고 혁신 주체들 간 협력과 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술은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이지만 지속적 추동력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노동 정책을 중시하는 것이 혁신을 지체하거나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오히려 노동과 혁신의 유기적 결합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득 주도 성장 차원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선 '동일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회적 혁신을 이뤄낸다면 공정 경제 원칙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고, 산업 생태계에 생산성 향상에 참여할 동기도 불어넣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는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주도 성장, 공정 경제의 세 축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제각각의 구동 방식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해야 하고 노동은 그 연결점의 시작이자 끝이다. 노동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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