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국경을 맞이한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한 야망을 키워가는 가운데, 과거와 달리 대한민국이 열정과 활력을 잃었다고 지적한 칼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16일자 칼럼 ‘한국몽(韓國夢)은 연기처럼 사라졌다’를 통해 과거 한국은 사업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이병철 삼성 전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과 같은 기업인이 준비한 반도체, 자동차가 오늘날 세계 일류를 만들어냈으나, 지금은 그러한 열정과 꿈을 찾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인의 꿈, 한국몽이 분출한 마당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유치한 평창올림픽마저 시들한 지경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양 주필은 우리는 이제 꿈이 없어도 될 만큼 다 이룬 나라인가라고 반문하며, 꿈을 잃은 나라는 병들고 분열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의 칼럼 전문이다.
 

한국몽(韓國夢)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틀 전이 박정희 탄생 100년이었다. 필자에게 박정희·이병철·정주영 세 사람 이름은 언제나 동시에 떠오른다. 이병철 탄생 100년 무렵인 8년 전에는 이 주제로 글도 썼다. 1910년 이병철, 1915년 정주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영, 1917년에 박정희가 태어났다. 정말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영웅 세 사람이 7년 사이에 한꺼번에 태어났다. 이 세 사람이 서로 돕고 자극하고 경쟁하며 대한민국 부흥이라는 인류 역사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스타일은 서로 달랐던 세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꿈'이었다. 한국 땅에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그런 꿈이 아니었다. 이들의 꿈은 내 정권, 내 기업만이 아니라 비루한 내 나라 한국을 부강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박정희는 '민족중흥'을, 정주영·이병철은 '사업보국'의 기치를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이병철의 반도체가 오늘날 세계 최고를 구가하고 정주영의 자동차와 배가 세계 일류를 달리는 것은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인 대부분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모든 사람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꿈을 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꿈이 결국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단군 이래 최극성기라는 대한민국의 태초에는 '꿈'이 있었다. 세 영웅의 꿈이 나중에는 온 국민의 꿈이 됐다. 모두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노래 부르고 일터로 나갔다. 독일 땅 수천m 지하에서 석탄을 캐고 독일 병원에서 시신(屍身)을 닦으면서도 '우리도 언젠가는 부강한 나라'를 꿈꿨다.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와 파독 간호사·광부들이 함께 애국가 부르며 오열했을 때의 눈물에는 한(恨)보다는 꿈이 있었다. 이 꿈은 너무나 간절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 국회 연설에서 '한국인들이 이룩한 것은 한국의 승리, 그 이상이다. 인류의 정신을 믿는 모든 국가의 승리'라고 했다. 한국인들이 이룩한 것은 바로 한국몽(韓國夢)의 승리였다.

이 한국몽을 가장 깊이 연구한 나라는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덩샤오핑은 일본 재계 인사들에게 "포항제철 같은 것을 지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중국이 박정희식 경제 발전 전략과 한국의 사회 변화를 공부한 흔적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세계 많은 나라가 새마을운동을 따라 하려는 것도 결국 한국몽을 배우려는 것이다.

시진핑이 내세운 중국몽은 신중국 건국 100년인 2050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몽에 앞서 '한민족 중흥'의 한국몽이 있었다. 요즘 중국인들의 모습은 과거 미국 언론이 '한국인들이 달려오고 있다'고 썼을 때의 우리 모습 그대로다. 아베의 일본몽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회복해 '아시아의 1등국'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 패권의 일본몽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심지어 북한몽도 있다. 핵 ICBM을 완성해 미국과 일대 담판을 벌이고 부자 남한을 깔고 앉겠다는 것이다. 한 방으로 전세를 일거에 역전하겠다는 대담한 꿈이다.

그런데 한국몽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하던 구호조차 이제는 없다. 그저 '나눠 먹자'는 게 대세다. 국가와 국민의 원대한 꿈이 있던 자리에 기초연금, 최저임금, 비정규직, 건강보험, 공무원 일자리가 들어섰다. 목표나 포부 없이 먹방과 예능에 열광하고, 공무원이 돼 작고 안전하게 살려는 게 우리 모습이다.

나라가 잘돼서 이만큼 사는 것이지만 '나라 잘돼봐야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풍조가 만연한다. 정치는 이 풍조를 타파하는 게 아니라 부추기고 영합한다. 생존과 쾌락, 인기 영합 사회는 외부의 위협에도 '설마' 하는 반응을 보이며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 그래서 생존과 작은 쾌락조차 지킬 수 없게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몽이 분출한 마당이었다. 세계인이 거기서 한국인의 꿈을 보았다. 이제는 겨우 유치한 평창올림픽마저 시들한 지경이다. 흥이 나서 화제를 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이 무엇이 될 수 있다, 우리도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꿈과 목표가 다 사라졌다.

그래도 기업에는 꿈이 남아 있지만 그마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재벌 3·4세들에게서 야심 찬 꿈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반도체 이후'를 물으면 누가 대답할 수 있나. 이제 그저 우리끼리 물고 뜯고 이겼느니 졌느니 하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느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꿈이 없어도 될 만큼 다 이룬 나라인가. 폭력을 예사로 행사하는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나라가 이렇게 목적지 없이 흘러가도 되나. 우리 사회 많은 문제의 밑바탕에는 우리가 국가적 꿈을 잃어버린 채 공동의 목적의식 없이 각자 제 이익만 추구하는 현실이 있다. 꿈을 잃은 나라는 병(病)들고 분열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반론보도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