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그룹이 경영자의 구속으로 정상적인 사업과 투자를 못하는 가운데, 국내 경제에서 삼성이 갖는 역할과 중요성을 제시한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문화일보 12일자 칼럼을 통해 삼성전자가 연간 매출 200조원 중 75조원을 한국 관련 기업으로부터 부품, 장비 , 서비스 등의 구매에 지출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대한 규제는 곧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이라고 시사했다.

특히 갤노트7 방화 와 같은 제품 결함은 후속 제품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이미지 추락은 회복이 어렵다며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조 교수는 세계를 상대로 뛰어야 할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것만큼 국가적 낭비는 없다며,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재판 진행에 차질이 없다면 경영자를 인신 구속은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문화일보에 실린 조동근 명지대 교수의 칼럼 전문이다.
 

정치가 할퀴고 지나간 經濟상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지난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8%로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2%대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올해도 대우조선해양 등의 현안으로 전망이 밝지 않다. 그 ‘근저 요인’을 성찰해야 한다. 지난달 16일 한 일간지가 삼성전자의 국민경제적 비중을 기사화했다. 취지는 삼성전자와 같은 초일류 기업이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소재로 한 기사이기 때문에 오해 여지가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2011~2015년 5년간 납부한 법인세는 총 29조 원으로 같은 기간 총 법인세수의 15%를 차지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기사에 대한 독자의 호감 투표 결과였다. ‘비(非)공감’을 선택한 클릭 수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었다. 국민경제적 기여에 굳이 공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반(反)기업 정서’가 작용했을 것이다.

반기업 정서의 원인은 ‘정경유착’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허가권으로 자원 배분을 좌지우지하던 개발연대가 아니다. 더욱이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일으키는 삼성이 정치권에 기댈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경제력 집중’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가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활동은 본질적으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것을 나누는 게 아니므로 한 기업이 커진다고 여타 기업이 커지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강자를 견제해야 약자가 살아난다는 믿음’은 경제를 영합(zero sum) 게임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전자산업 경쟁력은 ‘부품과 세트’ 간의 클러스터 경쟁력이 요체다. 삼성전자는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9만6000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 협력업체가 고용한 인원도 6만3000명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 200조 원 중에서 부품·장비·서비스 등 구매에 128조 원을 지출하며, 그중 60%인 75조 원을 한국 관련 기업에 지출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입액은 50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계열사 그리고 협력업체는 거대한 ‘공급망’이자 ‘가치사슬’이다. 삼성전자를 규제하면 그 비용은 협력 업체에도 분담된다.

근래 삼성전자의 글로벌 기업 평판이 수직 낙하했다. 평판의 급전직하는 “삼성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됐다는 주장”과 결코 무관치 않다. 국내외에 생중계된 지난해 12월 6일의 국회 청문회를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외신들은 이를 주요 뉴스로 타전했다. 갤노트7 발화 같은 제품 결함은 후속 제품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이미지 추락은 경우가 다르다. 이미지 추락에 더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해외부패방지법’(FCPA)의 적용 대상이 될 여지를 남겼다. 부패 기업으로 낙인 찍혀 FCPA 위반으로 제소되면 삼성전자는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전자산업의 빠른 변화 주기를 고려할 때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인수·합병과 같은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주회사 전환이 미뤄지면, 그러한 기회 손실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손해로 나타날 수 있다.

최근의 저성장 구조화는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를 상대로 뛰어야 할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것만큼 국가적 낭비는 없다. ‘무죄 추정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인신 구속을 하지 않더라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면 인신 구속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 하락, 반기업 정서가 삼성이 자초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는 경제의 울타리가 돼야 한다. 정치 소용돌이가 경제에 상처가 돼선 안 된다. 경제는 화초다. 시들면 회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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