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반기업정서와 재벌 개혁 움직임이 돌이킬 수 없는 기업 경쟁력 감소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 칼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조형래 산업2부장은 28일자 칼럼을 통해 재벌개혁만 하면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며, 오늘날 경제력 집중은 글로벌화와 정보기술 혁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의 복원력에 대한 과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기업들은 어지간히 두들겨도, 심지어 마음에 안 드는 오너를 내쫓아도, 풀어주기만 하면 기업 경쟁력이 금세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 시대적 흐름에 한번 뒤처진 것만으로도 사라져버린 노키아를 예로 들면서 포퓰리즘적 경제 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실린 조형래 산업2부장의 칼럼 전문이다.
 

[경제포커스] 대기업 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조형래 조선일보 산업2부장

우리 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기업을 보는 오랜 프레임이 있다. 대기업은 정경유착으로 성장해왔고 대기업 오너들은 하나같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정부 특혜를 받았던 대기업 중에서 경쟁력이 없어 망한 기업도 수두룩하고,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정경유착과 거리가 먼 해외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올리고 있는데도 이런 부분은 애써 외면한다. 오너가 있는 기업들의 성적표가 관치(官治)의 입김이 센 금융 분야나 대우조선해양 같은 주인 없는 기업에 비해 월등히 나은 것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재벌 개혁만 하면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 이런 프레임 속에서 나온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지금의 경제력 집중은 글로벌화와 IT(정보기술) 혁신 탓이 더 크다. 예컨대 제조업 중 물류 비용이 가장 낮은 반도체는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바람에 2000년대 초만 해도 10여 개씩 난립했던 D램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지금은 딱 3곳만 남았다. 그중 2곳이 한국 기업이다. 한국이 2000년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화의 가장 큰 수혜자인 셈이다. 또 연 매출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는 전 세계 80국 199곳에 달하는 해외 공장과 법인, 연구소의 실적을 단 일주일 만에 집계할 수 있다. IT 경영관리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면 아마도 똑똑한 재무 전문가 수천 명이 달라붙어도 수개월은 족히 걸릴 어마어마한 작업을 고작 30~40명이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 현상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지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문 경영인 체제의 미국 역시 100대 대기업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스타트업 숫자는 1970년대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 대기업들은 떡잎이 보이는 벤처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여 아예 경쟁의 싹을 잘라버린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10대 재벌의 경제 비중이 30%대에 달하고 스웨덴·홍콩·싱가포르 등은 우리보다 경쟁력 집중이 더 심하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재벌 때리기=일자리 창출, 소득 양극화 해소'라는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기업의 복원력에 대한 과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기업들은 어지간히 두들겨도, 심지어 마음에 안 드는 오너를 내쫓아도, 풀어주기만 하면 기업 경쟁력이 금세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당이 잘못하면 야당이 집권하듯 한 대기업이 무너지면 금세 다른 대기업이 나타난다는 전혀 근거 없는 신화다. 실제로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자, 삼성전자는 당시 시험용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재빨리 채택해 애플에 버금가는 스마트폰 기업으로 부상한 반면, 미적거렸던 1990년대의 절대 강자 노키아는 한 번의 판단 실수로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연루된 대기업들은 요즘 거의 그로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기업 사기를 북돋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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