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일부 대권 주자들의 포퓰리즘적 행보에 대해 세간의 우려가 높은 가운데 엘살바도르를 통해 포퓰리즘 정책의 위험성을 꼬집은 칼럼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남미 12개국 중 10개 나라가 모두 좌파정권이었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실패하면서 포퓰리즘의 폐해를 국민들이 실감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삼성, 현대차가 어려움을 겪는 현황에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더욱 큰데 법인세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어느새 법인세 인상이 우리 사회에선 만능 열쇠가 되어버렸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매일경제에 게제된 권태신 원장의 칼럼 전문이다.
 

[매경시평] 남미 포퓰리즘 망령이 한국을 떠도는 이유
 

▲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얼마 전 필자에게 엘살바도르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루이스 카르데날이라는 엘살바도르 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엘살바도르가 과거엔 중앙아메리카에서 비교적 잘사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정치도 경제도 상황이 좋질 않아요." 왜 그러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들이 집권에만 관심을 두고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역시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표만 생각하고 기업 세금을 높이면서 국내외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거나 해외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또다시 투자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악순환에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상황을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걸까.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인간의 행태와 의사결정이 달라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제학에서도 세금을 낮추면 개인의 경우 가처분소득이 높아지기 때문에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투자를 늘린다고 가르친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감세 카드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 기업인 삼성, 현대차도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들 외에도 크고 작은 기업들이 많이 어렵다.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인데 우리의 시장인 세계시장 상황도 언제 나아질지 모른다. 그런데 왜 정치권에서는 법인세 인상을 이야기하는 걸까.

세금을 올리려 할 땐 정확한 용처가 있어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복지 재원이 부족해서라고 해선 곤란하다.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등장해야 하고 연차별 재원조달계획이 나와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우리가 내년부터 이런 복지프로그램을 가동하려면 내년엔 얼마의 재원이, 그 이듬해엔 얼마가 필요하니 재원조달은 이렇게 하겠다.` 이게 필자가 생각하는 상식인데 현재 정가의 논의는 법인세를 인상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만 함몰된 느낌이다. 어디에 구체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없이 말이다. 개인이 집을 사려 할 때도 집값이 얼마고 내가 지금 사는 집을 팔면 얼마가 생기고, 가용한 적금 등 돈은 얼마고, 대출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를 궁리하는데 나라살림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어선 곤란하다.

그다음 논의돼야 할 것이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다. 일단 지금 국가예산이 쓰이고 있는 것들이 적절한지, 낭비적인 부분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다시 말해 세출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필자가 기재부 예산실에서 근무할 당시 경험에 의하면 눈먼 예산이 적지 않다. 허울뿐인 벤처·중소기업에 지원되는 돈, 중복 지원되는 예산, 정책효과가 없는 전시행정성 예산 등. 이러한 것들을 절감해 그 돈을 적절한 세출처로 돌리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예산이 부족한 부분은 국민들의 양해를 얻어 세금 인상을 논의하는 것이 순리다. 증세 카드가 가장 마지막에 나와야 하는 이유는 조세저항이 그만큼 크고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가 없는 기업, 특히 대기업은 조세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선 어느샌가 법인세 인상이 만능열쇠 비슷하게 돼버렸다. 법인세만 올리면 국민 복지 증진이 다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지금 정가에선 `거두절미하고 낙수효과가 없으니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측과 `경제가 어려우니 법인세율을 올릴 때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왜, 뭘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셈법이 없다. 게다가 법인세 인상이 어느 틈에 경제민주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핑크 타이드(pink tide). 남미 국가들의 좌파정권을 일컫는 표현이다. 지난해 초까지 남미 12개국 가운데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제외한 10개 나라가 모두 좌파정권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조류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고 있다. 브라질,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페루, 베네수엘라 등 중도우파로 정권 또는 다수당이 바뀌고 있다. 그 이면에는 포퓰리즘의 폐해를 국민들이 체감했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에서 찾아온 손님은 필자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 경제가 성장의 기적을 이룬 배경이 시장경제라는 이야기를 해주시고, 포퓰리즘 정책의 문제점을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설명해주세요." 필자는 이렇게 답했다. "유 투(You,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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